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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율사같이 위대한 분도 순간적으로 상에 사로잡혀 그런 어리석음을 저질렀습니다.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몇 년을 간절히 기도했으면서도 정작 문수보살이 나타나자 기도에만 집착해 문수보살을 쫓아버린 격이었습니다.
불보살은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소리 없이 내려와 언제나 고통받는 중생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불보살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불보살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상에 빠져 하늘만 쳐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속박의 끈을 더 단단히 조여 맨 것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누에가 제 입에서 나온 실로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 갇히듯, 내가 일으킨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구속합니다. 고정관념으로 만들어진 온갖 상을 깨뜨리면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와 창공을 훨훨 날듯 내 앞에 자유로운 세상이 활짝 펼쳐집니다. 이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금강경 강의 142)
2.
내 입장을 버리고 실상의 측면에서 본다면 세상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윤리 도덕적인 고정관념의 상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옳고 그름을 재단하는 것은 괴로움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상을 깨고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보면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이 생기든지 미워하거나 원망할 일이 없습니다. 그가 내 마음을 오해해서 나를 미워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세상 누구하고도 원수질 일이 없고 미워할 일이 없습니다. (금강경 강의 193)
3.
이러한 행동은 지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확실히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어쩌면, 편견과 전제 없이 지각할 수 있는 역량에 기초하고 있는 충분한 정도의 지혜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시의 마음을 꽉 채운 끔찍한 멍청이와 범죄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이러한 독재자에 접근한다면, 당신은 부득이하게, 특별한 방식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물론 그 남자는 범죄자이며, 그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는 칠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그리고 그의 독재 체제의 공포들에 대해 자기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연설을 들으면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 평가에 매달린다면, 우리는 정신적 갈등들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결국에는 틀림없이 의도되어 있는) 애국심을 갖고 있는 그의 내면의 감옥에 갇힌 인간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그에게 말을 할 때 이 인간에게 집중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함으로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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