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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입장을 버리고 실상의 측면에서 본다면 세상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윤리 도덕적인 고정관념의 상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옳고 그름을 재단하는 것은 괴로움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상을 깨고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보면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이 생기든지 미워하거나 원망할 일이 없습니다. 그가 내 마음을 오해해서 나를 미워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세상 누구하고도 원수질 일이 없고 미워할 일이 없습니다. (금강경 강의 193)

2.

제가 한참 혈기가 있을 때인 20대에는 불교 개혁 운동을 했습니다. 당시 불교계가 시끄러웠잖아요. 비구와 대처 간에 분쟁이 있었고, 총무원장을 서로 하려고 싸움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봉암사 선방 조실 스님을 그분이 누군지도 모르고 우연히 만났습니다. 만나자마자 불평과 불만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개혁되어야 합니다. 스님들의 행위, 절의 운영 방식, 교육, 모두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렇게 두 시간 동안 비판을 했는데, 그분께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다 들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보게. 어떤 사람이 말이야. 논두렁 밑에 떡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네. 그곳이 절이야. 그것이 불교라네.’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불교를 개혁한다고 하면서도 저는 불교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머리 깎고 가사 장삼을 수한 사람이 스님이고, 기와집이 절이고, 이런 제도와 교육 시스템이 불교다.’

그래서 문제가 많다고 주장을 했는데, 이 분이 하신 말씀은 ‘너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느냐, 잠꼬대하느냐?’ 이 얘기였어요. 중이라고 하는 수행자는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고 그 마음이 청정한 자가 수행자라는 겁니다. 절이라는 것은 기와집이 아니고 마음이 청정한 자가 머무르는 곳이라는 겁니다. 설령 논두렁 밑에 앉아 있어도 그곳이 절이라는 거예요. 그때 제가 자각했습니다.

‘내가 불교를 개혁하겠다고 하는 그것마저도 꿈속의 노름이었구나! 그건 바로 허공에 헛꽃을 꺾으려 하는 것이었구나!’

허공에 있는 헛꽃은 환상의 꽃이에요. 환상의 꽃을 꺾으려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잖아요. 그분의 말씀은 ‘부질없는 짓 그만하고 눈을 떠라. 환영에서 깨어나라’ 이런 얘기였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이런 모양을 갖고 수행자니 아니니 생각을 버렸어요. 어떤 집을 갖고 이것이 절이니 아니니 이런 생각도 버렸습니다. 우리가 진실에 대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런 대화를 하는 그 사람이 수행자이고, 그런 사람이 찻집에 앉아 있으면 찻집이 절이고, 가정집에 앉아 있으면 가정집이 절이고, 교회에 앉아 있으면 교회가 절입니다. 들녘에 앉아 있으면 들녘이 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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