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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갈림
미국의 뉴헤이번 선원에서 법문이 끝난 후였다. 누군가가 "큰스님, 마음이 공함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꼭 생사의 고통을 거쳐야 합니까?"하고 질문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 묻겠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삶에서냐, 죽음에서냐?"
제자가 대답했다. 숭상 큰스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삶에서? 삶이 뭔데?"
제자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하다 입을 뗏다.
"자아(自我)요."
"자아? 자아가 무엇이냐?"
제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큰스님께서 컵을 들며 말씀하셨다.
"여기 물 보여? 아마 지금 18도쯤 될 거야. 온도를 영하로 낮추면 물은 얼음이 되고 100도쯤으로 올리면 수증기가 돼. 물인데 온도에 따라 형태가 생기고 없어지고, 생기고 없어지고 이런다 이거야. 물에서 얼음으로, 얼음에서 수증기로 바뀌고, 또 다시 물로 바뀌어. 이렇게 형태는 변해. 그러나 H2O라는 본질은 없어지거나 생기지 않아. 형태만 변해. 물, 얼음, 수증기, 다 이름과 모양일 뿐이야. 이름과 모양은 언제나 변하지만 H2O는 변하지 않아. 물의 온도를 알 수 있으면 형태도 알 수 있어.
죽음에 대해 물었지? 너의 참나가 뭐야? 이건 너의 손이고 발이고 몸뚱이야. 네 몸뚬이는 나고 죽어. 그러나 참나는 나고 죽지 않아. 넌 '내 몸이 아냐. 이게 나야'라고 생각해. 아니야. 몸뚱이는 모양일 뿐 진정한 '나'가 아니라고, '나'라든지 '죽는다'라고 생각하면 그건 미친 짓이야. 깨어나!
물, 얼음, 수증기는 모두 H2O야. 그러나 물에 집착하면 물이 얼음으로 바뀔 때 넌 물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면 '죽었다"고 하겠지. 그러나 온도를 높이면 '짜잔!' 물이 다시 '태어났다!"고 할 거야. 온도를 더 올리면 물이 없어지고 수증기가 돼. 그렇게 되면 물은 다시 '죽게'돼.
'물'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마. 이름과 모양에 불과하다 이 소리야. 이름과 모양은 본래 텅 비어 있어. 항상 변하고, 변하고, 변하고, 변하기 마련이야. 생각이 이름과 모양을 만들어. 물은 '나는 물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 바가 없어. 태양은 '나는 태양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 바가 없어. 달은 '나는 달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 바가 없어. 인간은 '물'이라고 말해. 인간은 '태양'이라고 말하고, '달'이라고 말한닥.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름과 모양은 공하다 이거야. 자성이 없어. 생각이 지어낸 거야. 생사도 마찬가지야.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면 H2O를 알 수도 없고 물 ,얼음, 수증기를 올바로 사용하지도 못 해. 이름과 모양에 집착한다는 것은 외형에 집착한다는 소리야. 금강경에 보면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고 나와.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바로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이런 뜻인데 다 같은 내용이야. 그러니 모든 생각을 끊어. 모든 생각이 끊어지면 마음이 텅 비어. 그러면 일체를 있는 그대로, 진리로 보게 돼. 있는 그래로 보면 물의 올바른 쓰임, 얼음의 올바른 쓰임, 수중기의 올바른 쓰임을 제대로 알게 돼. 이걸 다른 말로 실용(實用)이라고 해. 아주 쉬워. 그렇게 되면 너의 '참나'는 찰나 찰나 찰나 중생 구제를 위해 올바르게 살 수 있어. 그것이 바로 생사의 올바른 기능이야."
제자는 깊이 머리 숙여 절하였다.
<부처를 쏴라>
mlwlab.com: 나에게는, 숭산스님의 설법을 엮은 <부처를 쏴라>가 스피노자의 <윤리학> '1부 신에 대하여'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측면을 제시한다. 여기 인용글에서도 물의 본체를 H2O로 삼아 본체와 본체의 변용들(물, 얼음, 수증기)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윤리학>에도 이와 같은맥락의 언급이 '1부 신에 대하여'에 나와 있다. <예컨대, 물은, 물인 한에 있어서, 분할되어 그것의 부분들이 서로 분리되지만, 그것이 물질적 실체인 한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파악한다. 왜냐하면 실체인 한에 있어서의 그것은 분리되지도 분할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물은, 물인 한에 있어서, 생성되고 소멸하지만, 실체인 한에 있어서는 생성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1부 정리 15 주석)>
숭산스님의 설법을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물은 실체가 변용된 양태이며, 얼음, 수증기는 실체의 속성을 표현하는 양태들이다. 양태들은 실체의 변용들일 뿐이다. 물처럼 양태 하나만 놓고보면 생기고 소멸되지만 실체인 한에서는 변용일 뿐이고 배치가 달라졌을 뿐이다. 즉 생성도 없고 소멸도 없는 불생불멸인 것이다. '불생불멸'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게한다.
또하나. 양태는 실체의 변용이다. 실체는 양태에 내재한다. 마음이 몸에 내재하듯이. 실체와 양태가 둘이 아닌 하나임을 알때 불생불멸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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