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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본체
"스님께서는 신을 믿으십니까?"
한 여성이 숭산 큰스님께 물었다.
"물론이지요!"
여자는 당황했다.
"아니, 일반 스님도 아닌 선사이신 분이 어떻게 신을 믿을 수 있어요?"
"나는 내 손을 믿습니다. 내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마음을 믿어요. 그런데 신을 못 믿을 이유가 뭐 있습니까? 당신이 당신의 참나를 온전히 믿는다면 하늘은 푸르고 나무는 초록이고 개는 '멍멍!'하고 짖는 걸 믿게 돼요. 매우 간단하지요?"
여자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숭산 큰스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불교에서는 '하나하나가 완전하다.'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 당신 마음은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마음이 완전할 수 있는가?(주장자를 내려치시며) 바로 이 순간입니다. 금방 소리 들으셨어요?(주장자르 다시 내려치시며) 이 순간은 이미 완전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일으키면 완전하지 못해요. 소리가 나는 순간 (주장자를 내리치며) 소리만 듣습니다. 이 순간 (주장자를 내리치시며) 소리와 당신은 이미 하나예요. 당신과 우주가 그대로 하나라는 말입니다. 주체도 객체도 없고, 안도 밖도 없습니다. 안과 밖이 이미 하나입니다. 이를 가르켜 절대, 혹은 진리라고 합니다.
이 순간을 지나면 (주장자를 내려치시며) 완전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태양과 달과 별과 일체가 온전합니다. 당신의 소리와 내소리는 같아요. 이 소리는 (주장자를 내려치며) 당신의 본체입니다. 이 소리의 본체와 당신의 본체는 이미 하나입니다. 나의 본체와 이 소리의 본체는 이미 하나입니다. 태양, 달, 별 등 만물의 본체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일일구족 진진상통(一一俱足 塵塵上通)'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소리의 본체와, 이름과 모양은 이미 하나임을 뜻해요. 얼음과 물, 수증기가 있다고 가졍해 봅시다. 각각 이름과 형태는 달라요.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H2O예요. 물은 H2O입니다. 얼음도 H2O입니다. 수증기도 H2O이지요. 이름과 형태는 다르지만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바뀝니다. 그러나 본체는 똑같아요.'
"그래도 이해가 잘 안 돼요. 신에 대한 제 질문과도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고요."
여자가 말했다.
"방하착(放下着)하세요. 놓아 버려라 이 말입니다. 생각을 지으면 어렵게 보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생각을 하면 '나'를 만들게 됩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어요. 생각이 '나'라는 존재를 만듭니다. 생각이 일체를 만듭니다. 그러나 생각을 끊으면 어떻게 돼요? 생각을 하면 삼라만상을 만듭니다. 생각을 하면 일체가 만들어져요. 그렇게 되면 '나'와 '신'과 '부처'와 일체가 분리됩니다. 그러나 이 포인트, (주장자를 내려친다) 이 순간을 항상 유지하면 당신과 신은 결코 분리되지 않아요. 매우 쉽지요. 그렇지요?"
<부처를 쏴라>
mlwlab.com: 위의 인용한 글은 스피노자의 <윤리학> 제1부 신에 대하여를 요약풀이해 놓은 글로 읽힐 만큼 서로 상통한다. 여기 본체란 용어는 스피노자의 '실체'로, '하나하나가 완전하다'는 스피노자의 정의 "실재성과 완전성은 동일하다."와 같은 뜻이며 '일일구족 진진상통'이란 말과 함께 예로 삼은 물에 관한 이야기는 스피노자의 "실체와 양태" 바로 그것이다.
한편 <윤리학>은 왜 생각을 내려놓아야하는지, 또는 왜 인간은 생각 또는 감정에 예속되는지를 4부와 5부에서 설명한다. 내가 스피노자에 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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