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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하루

알아차림

T1000.0 2022. 4. 1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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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14 두릅 따기, 정토불교대학 실천적 불교사상 6강

“사주팔자가 백프로 맞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2022.04.17.
29,322
읽음
안녕하세요. 오늘은 봉화 수련원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곧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봉화 수련원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슬비가 흩날렸지만 일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과연 두릅이 잘 자랐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두릅나무가 많은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이야!”

두릅이 먹기 좋을 정도로 자라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만 늦어도 두릅이 억세져서 먹기 어려운데 올해는 시기를 잘 맞춰 두릅을 딸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한 시간 넘게 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두릅을 땄습니다. 새롭게 자란 두릅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아직 어린순은 남겨두고 두릅을 한 포대 따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두릅은 모두 싱싱하고 좋았지만 크기가 적당하고 모양이 예쁜 것은 선물용으로 따로 포장했습니다. 크기가 좀 작거나 큰 것은 바로 데쳐서 아침 공양 반찬으로 먹었습니다. 향긋하고 쌉싸름한 내음이 일품이었습니다.




아침 공양을 하고 스님은 화장실 주변에 난 두릅나무도 살펴보았습니다.


잘 큰 두릅만 따서 나오다가 스님은 화장실로 올라가는 길이 푹 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매트를 들어 아래를 보니 축대가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냥 두면 위험하겠어요.”


스님은 주변 자연에서 나무, 돌, 지푸라기를 가져와 움푹 팬 구멍을 메웠습니다.








그 위에 포대와 모래까지 얹고 잘 다져준 후에 다시 매트를 덮었습니다.








9시가 넘어서 봉화 수련원을 출발했습니다. 점심시간 즈음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점심 공양을 하고 오후에는 불교대학 강의 준비와 원고 교정 및 업무를 보았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 정각에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강의를 하기 위해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학생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지난 시간에 배운 중도에 대해 다시 한번 간단하게 요약해서 설명한 후 오늘의 강의 주제인 ‘팔정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중도(中道)를 구체적인 행동 지침으로 나눠서 말한 것이 여덟 가지 바른 길인 ‘팔정도(八正道)’입니다. 팔정도에는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가 있습니다.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라
사람은 우선 말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말을 하는 이유는 타인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의 목표가 의사 전달이기 때문에 말할 때는 첫째, 사실을 말해야 돼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자기감정을 토로하는 화풀이로 말을 하거나 욕설을 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더불어 살아야 하기 때문에 화합하는 말을 해야지 남을 험담해서 분열시키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넷째, 필요한 말을 해야지 쓸데없는 잡담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데 필요한 말인지 살펴보고, 필요 없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사실을 알리는 말을 해야지 명령조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말을 바르게 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 말을 하는 그 목적에 충실하게 말하는 거예요. 이를 일컬어 한문으로는 ‘정어(正語)’라고 합니다.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라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통받는 사람을 살려주는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물에 떨어지려는 아이를 구해내는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아이를 잡아서 우물에 집어넣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나무를 심을 수도 있고 벨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구해줄 수도 있고 때릴 수도 있습니다.

첫째, 남을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해치는 행동은 때리거나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거나,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그냥 주워가는 것은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동입니다. 셋째, 남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좋다고 해서 나를 싫어하는 상대를 껴안고 뽀뽀하면 상대가 괴롭습니다. 내 권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가 살 권리가 있지만 남을 해칠 권리는 없고, 내 이익을 추구할 권리는 있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칠 권리는 없습니다. 나의 즐거움을 추구할 권리는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타인에게 괴로움을 줄 권리는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행동을 바르게 하라는 말의 뜻입니다. 이것이 나중에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이라고 하는 계율이 된 거예요. 남을 해치는 행동, 재물을 훔치는 행동, 성추행 등 타인을 괴롭히는 행동은 하지 마라는 겁니다. 행동을 하려거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위로해주는 행동을 해라. 이것이 ‘바르게 행하라’ 하는 정업(正業)입니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라
직접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생활방식’을 바르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좁혀서 말하면 ‘직업윤리’입니다. 내가 먹고 입고 살아가는 방식이 남을 해치는 생활방식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특히 무기를 만들거나 유통시키거나 보관하는 일은 내가 직접 생명을 죽이지 않더라도 결국은 다른 생명이나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자기가 직접 성추행한 것은 아니지만 성매매를 주선하거나 성매매 사업을 하는 것도 남을 해치는 생활방식입니다. 이렇게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말고,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서로 돕는 생활방식을 갖는 것이 ‘정명(正命)’입니다.

정정진(正精進), 바르게 노력하라
‘바르게 노력해라’ 하는 것이 정정진(正精進)입니다. 우리는 ‘노력한다’라는 말을 보통 어떨 때 씁니까?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할 때 노력이라고 합니다. 아이가 만화를 열심히 보거나 게임을 할 때는 ‘노력한다’ 하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은 노력이라는 말을 안 써요.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노력이라고 말하죠. 그래서 노력을 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만듭니다. 막 애를 쓰고 살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그래서 사는 게 힘듭니다.

다람쥐나 토끼가 숲에서 사는 모습을 보세요. 하나도 힘이 안 들어 보이죠. 그런데 사람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까요? 애쓰고 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애쓰다가 안 되면 포기합니다. 안 해버려요. 즉 게으름을 피웁니다. 그런데 다람쥐나 토끼가 게으름을 피우는 거 봤어요? 자연의 원리는 애쓰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그냥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나가는 겁니다. 애쓰지도 않고, 게으름 피우지도 않고,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정정진(正精進)’입니다.

정념(正念), 바르게 알아차려라
인간의 정신 작용 중에 가장 뛰어난 작용이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화가 확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화를 팍 내어버립니다. ‘너 왜 화냈니?’ 이렇게 물으면 보통 세 가지로 답합니다.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무의식적으로 화를 냈다’
‘습관적으로 화를 냈다’

공통점은 모두 몰랐다는 거예요. 이게 무지입니다. 우리의 수많은 말과 행동, 생각은 대부분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듣고 내가 보고 내가 말하고 내가 생각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당 부분이 자동으로 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빅데이터를 갖고 분석하면 쉽게 여러분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마케팅 방식도 예전처럼 같은 내용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그 사람의 성향에 맞게 광고를 개별적으로 노출합니다. 선거에서도 ‘저 사람은 어떤 성향이다’ 하는 걸 파악해서 거기에 맞게 홍보를 해요. ‘저 사람은 이걸 보여주면 설득이 된다’, ‘저 사람은 이것을 좋아하고 저것은 싫어한다’ 이런 정보를 다 모아서 맞춤 광고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산다고 하지만, 실제로 여러분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구, 성질, 판단에 늘 끌려 다닙니다. 판단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교육받은 대로 판단하거나 관습 등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유를 들면 마치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과 같습니다. 낙엽은 자기가 막 날아가는 것 같지만, 바람이 멈추면 어느 계곡에 떨어질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사주팔자가 백프로 맞을 수 없는 이유
그런데 인간의 정신 작용 중에는 이렇게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운명이나 사주팔자, 점괘 같은 것이 백프로 맞을 수가 없는 이유도 인간에게는 알아차림이 있기 때문이에요.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대로 따라가면 ‘이 사람은 이런 자극이 있을 때 화를 낼 수밖에 없다’ 하게 되는데, 만약 그 사람이 자동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면 그 반응을 멈출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건드리면 화가 탁 난다’ 하는 원리를 자기가 미리 알고 있으면, 화가 확 일어날 때 스스로 ‘어, 지금 자동적으로 반응하는구나’ 하고 딱 알아차려서 그 반응을 멈출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만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계기입니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해도 안 바뀝니다. 억지로 변화를 시켜놓아도 외부의 힘이 없어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버려요.

그런데 ‘저 사람은 개과천선했다’, ‘사람이 바뀌었다’ 이런 말을 가끔 합니다. 즉문즉설에서도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듣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 스님의 법문을 듣고 인생이 바뀐다면 제 법문을 들은 여러분 모두가 바뀌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 중에는 바뀌는 사람도 있고 안 바뀌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뀐 사람은 법문을 듣다가 ‘내가 화가 많구나’, ‘내가 어리석었구나’ 이렇게 알아차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자각(自覺)’이라고 해요. 이렇게 스스로 알아차릴 때만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자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는다’, ‘지혜를 증득한다’ 이렇게 말할 때도 알아차림이 핵심입니다. 이 알아차림을 ‘정념(正念)’이라고 합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알아차리는 기능을 강화시키는 겁니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을 딱 알아차리면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내가 결정할 수 있어요. 수행은 어쩌면 그 초점이 모두 알아차림에 맞춰져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화가 많구나’, ‘내가 어리석구나’, ‘이러면 내가 손해지’ 이렇게 자각을 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입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 알아차리는 기능은 개발되지 못했어요. 개발한다고 해도 맨 마지막 단계에 가능하거나, 어쩌면 영원히 개발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정정(正定), 바르게 집중하라
우리들의 마음은 불안하거나 긴장하거나 들뜨거나 산만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해요.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면 아무런 할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할 일이 있는데 어떻게 편안할 수가 있겠어요. 할 일이 있으니까 자꾸 조급해 지는 겁니다. 그러니 할 일 없이 한가하고 편안한 마음을 우선 가져야 해요. 들뜬 마음이나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을 갖습니다. 이렇게 편안해지면 졸거나 멍청하거나 산만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마음을 한 군데에 딱 집중을 해야 합니다. 마음이 편안한 가운데 딱 집중을 하는 것, 이것이 정정(正定)입니다.

정견(正見), 바르게 보라
이렇게 바른말과 행동을 하고, 바른생활을 하고,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정진하고, 선정을 닦으면, 통찰력이 생깁니다. 어떤 사물을 볼 때 편견이나 감정, 욕망에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성질이 나거나 욕망에 확 치우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욕망에 눈이 어둡다’, ‘화가 나니까 눈에 뵈는 게 없다’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무지예요.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는 게 없다’ 이런 상태이니까요. 그럴 때 대부분 심리가 흥분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욕구, 감정, 시비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술을 먹지 말라는 이유도 술을 마시면 흥분이 되고, 흥분이 되면 감정이 격해져서 싸우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성추행하거나 욕설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술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니 마음이 흥분돼서 들뜰 때까지 술을 마시면 안 돼요. 여러분들은 술을 마시고 마음이 들떠야 ‘기분 좋다’ 하면서 기뻐하잖아요. 그것은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마음이 차분하고 알아차림이 유지되는 가운데 집중이 되면 통찰력이 생깁니다. 통찰력이 생기면 상대편이 말하는 의도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고, 상대가 화를 내도 ‘감정에 휩싸여 있구나’ 하고 바로 알아차려서 상대의 말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통찰력이 생기는 것을 지혜라고 하고, 이것이 ‘정견(正見)’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 곧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정사유(正思惟), 바르게 생각하라
이렇게 바른 관점을 갖고 있으면 생각이 바르게 됩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원인을 모르니까 우연이니 신비니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어떤 현상이 나타났다면 반드시 원인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탐구해야 합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예측해서 알고, 작용이 있다면 반드시 거기에는 반작용이 있음을 아는 것이 정사유(正思惟)입니다.

‘지금 당장의 순간적인 욕망에 휩싸이면 이런 과보가 따르겠구나’

이렇게 인과를 예측하는 것을 두고 사유가 올바르다고 하는 겁니다. 직관력이 있어서 사물을 통찰력 있게 보는 것을 정견(正見)이라고 하고, 올바른 사유를 하는 것을 정사유(正思惟)라고 합니다.

정견과 정사유가 있으면 말이 저절로 바르게 나오고, 행동이 저절로 바르게 됩니다. 생활방식도 저절로 바르게 됩니다.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노력하게 되고, 알아차림이 유지되고, 마음이 한곳에 딱 집중이 됩니다. 그러면 더욱더 통찰력이 생기고, 그 통찰력에 기반해서 사유가 더 정확해집니다.

그래서 팔정도는 지금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되어 주고, 지금 괴로움이 없는 사람에게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는 길’이 되어 줍니다. 딱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괴로움이 일어날 틈이 없어요. 예를 들어, 상대가 욕을 해서 성질이 확 났을 때 그 성질을 가라앉히는 것도 팔정도이고, 알아차림을 항상 유지해서 상대가 욕을 해도 성질이 안 일어나게 하는 것도 팔정도입니다. 팔정도를 실천하면 괴로움이 안 일어나기도 하고, 괴로움이 일어나도 바로 알아차려서 그 괴로움을 가라앉힐 수도 있습니다.

즉문즉설의 원리
어떤 사람이 질문을 했어요.

‘남편이 술을 먹어서 같이 못 살겠어요, 어떡하죠?’

도저히 같이 못 살 정도가 되었으면 자기 스스로 이혼을 할 텐데 그걸 왜 스님한테 물을까요? 그래서 제가 질문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안 살면 되지요.’
‘헤어지라고요?’
‘못 살겠다면서요?’
‘헤어지려니까 애가 있어서요.’
‘애가 있으면 고아원에 데려다주면 되죠.’
‘어떻게 애를 고아원에 데려다줘요?’
‘그럼 혼자 키우면 되죠.’
‘나 혼자 어떻게 키워요?’
‘그럼 같이 살면 되죠.’

스님이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면 여러분들 중에는 ‘스님이 왜 남의 속을 뒤집는 소리를 하냐’ 하면서 답답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런 대화를 통해서 이것이 남편 문제도 아니고 아이 문제도 아니고 내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게 하려는 겁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아, 별 일 아니었네!’, ‘내가 아이 핑계를 대고 있구나’ 하고 자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남편과 같이 안 살려는 마음이 강하면 ‘아이 때문에라도 헤어져야겠습니다. 아이한테 너무 나쁜 영향을 줘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남편 하고 안 살 마음이 더 커졌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왜 남편과 갈등이 생겼는지 대충 감이 잡혀요. 이것은 사주나 관상을 봐서 아는 것도 아니고, 점쟁이여서 아는 것도 아니에요. 한마디로 통찰력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팔정도를 통해 통찰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서로 맞물려 있는 팔정도, 중도, 계정혜
바른 지혜가 있어야 바른 사유가 나오고, 바른 사유가 있어야 말이 저절로 편하게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팔정도는 따로따로 있는 여덟 가지가 아니고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여덟 가지의 기초에는 항상 중도가 있습니다. 중도란 치우치지 않는 거예요. 우리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 괴로움이 없는 삶, 자유로운 삶입니다.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가장 바른 길이 중도입니다.


중도를 우리의 일상에서 세부적인 지침으로 나누면 여덟 가지가 됩니다. 이 여덟 가지를 다시 모으면 계정혜(戒定慧) 셋으로 묶을 수 있습니다.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하는 것은 계(戒)입니다. 바르게 노력하고 알아차리고 집중하는 것은 정(定)입니다. 통찰력과 바른 사유는 혜(慧)입니다. 이것을 다시 하나로 묶으면 중도이고, 중도를 펼치면 팔정도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강의를 한 후 이번 주 수행 연습 과제를 이야기해 주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오늘 수업을 듣고 난 소감을 나누고, 지난주 수행 연습 과제를 해본 후 어땠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내일은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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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 왠지 어렵군... 실천하지 않아서인가..

2022-04-18 13: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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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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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 알아차림
잘 새기겠습니다
샤팔자타령 하면서 40년을 살았는데

2022-04-18 11: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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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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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감사합니다 스님, 팔정도의 가르침 많게 느껴지지만 잘 적용해봐야겠다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4-18 10: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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