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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업이라고 불리는 언행은 이처럼 다시 몸, 입, 의지로 되먹임feedback되어, 이전에 했던 것을 좀 더 쉽게 하도록 만들고, 그 결과 하던 일을 계속 반복하는 '상향'을 만들어낸다. 좋아하는 것을 좀 더 반복하게 하고 싫어하는 것을 피하려는 성향을 만들어낸다. 이것도 자업자득이고 자작자수다. 업이란 말에는 하던 것을 계속하게 하는 성향이, 그런 관성적인 잠재력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업의 힘은 각자의 삶을 어떤 영역 안에 머물게 하고, 어떤 궤도를 돌며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하게 만든다. '정체성'이라고도 번역되는 '동일성identitiy'은 이런 업의 힘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와 달리 자신에게 되먹임되는 과정[불수자성]을 그때마다 만나는 조건의 차이를 집어넣는다면[수연성], 그 조건의 차이는 동일성에서 벗어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즉 능력이나 성향의 변화를 야기한다. 연기적 조건의 차이는 이런 식으로 업의 힘에 끼어드는 빈틈이고, 변화를 만드는 여백이다. 

<불교를 철학하다p32>

 

2.

업이 대개 자유와 반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독자의 신체가 그렇듯, 같은 것을 반복하게 하는 업의 힘이 '관성적인' 삶을 살도록 만들고, 심지어 해선 안 된다고 믿는 것도 반복하게 만든다. 늘 하던 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생각에 의해 배제된 것들은 생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들이 느낄 서운함이나 분노 이전에, 배제된 것들을 계속 배제한 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자업자득이다. 그것은 생각하는 이의 사고능력을 협소하게 제한하고, 생각 밖의 일들에 무능하게 만든다. 이런 사고는 자유로운 사고와 반대로 갇힌 사고다. 자유란 이 관성적인 힘에서 벗어나는 이탈의 힘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업의 인과를 피할 수 없기에 그 힘을 따라가면서도 이런 이탈의 힘을 뜻하는 대로 작동시켜야 우리는 비로소 자유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업이기를 중단하는 업'으로 정의되는 부처의 업에 다가가게 된다.

<35>

 

3.

중요한 것은 업과 연기는 하나로 합하여 작용할 때조차 실은 상반되는 방향의 힘을 가동시킨다는 것이다. 연기는 타고난 본성이라고 믿었던 것조차 조건에 따라 아주 다른 것이 되게 한다면, 업은 본성이 아닌 것조차 반복되면서 본성처럼 몸과 입, 의지에 달라붙어 관성적인 언행을 만들어낸다.

'성향'이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관성적인 힘을 표시하는 말이다. 업의 논리는 조건이 달라져도, 심지어 다른 생이 되어도 하던 것을 반복하고 지속하게 하는 힘을 행사한다. 반면 연기는 조건이 달라진다면, 어떤 강력한 업의 힘도 다른 본성을 갖는 다른 힘으로 바뀔 것이라고 가르친다. 본성도 달라지는데, 업의 힘이 달라지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36>

 

4.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업이란 말로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반복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그 경우 충실성은 오히려 현재를 과거의 업에 복속시킨다. 과거의 업이 현재를 만들었다고 해도, 지금의 조건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과거의 업만은 아니다. 지금 다가온연기적 조건은 과거와 다른 삶을 향해 업의 방향을 바꾸게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만족할 수 없는 업의 궤도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조건에서 어떤 게 좋은 삶인지를 매번 다시 생각하고,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수연성] 그것이 연기란 개념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르침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럴 때 연기는 업의 힘에서 벗어나는 자유와 해방의 가르침이 될 것이다. 연기를 가르치는 불교가 '대자유'를 향한 삶을 촉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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