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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지가 실상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는 근본적으로 동일성 때문에 무상의 실상을 볼 수 없는 이런 조건에서 기인한다. 근본적 층위에서 발생하는 이 무지란, 새끼줄을 뱀으로 오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뱀을 뱀이라고 보는 데 포함된 오인이다. 눈앞의 대상이 전에 본 뱀과 '동일한' 대상이라고 보는 데서 오는 오인이다. 따라서 그것은 눈을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을 사용하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귀가 막혀 들리지 않느 것이 아니라 귀로 분별하기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지 '빛이 없어서' 무상의 실상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눈이 필요로 하는 빛에 의해 무상의 실상이 가려지는 것이다.
이런 무지를 '근본적 무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는 세상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알려고 하는 욕구와 함께 온다. 이게 오류라면, 말을 잘못해서 야기되는 오류가 아니라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야기될 수밖에 없는 오류고, 생각을 하지 않거나 생각을 잘못해서 오는 오류가 아니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면할 수 없는 오류다. 지식이 없음이 아니라 지식으로 인해 야기되는 오류다. 그때그때 발생하는 우연적인 오류가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언제나 발생하기 마련인 필연적 오류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필요와 편의를 위해 치러야 하는 필연적 대가다. 사람의 의지가 스며든 "모든 유위법이 꿈같고 환영같다<금강경>"라고 할 때 '환'이란 개인의 주관적 착각이 아니라 모두의 이 필연적 착각을 뜻한다고 해야 한다. 모든 여래의 열반이 '유위도 아니고 유위를 떠난 것도 아니<금강경오가해>'라 함은 그것이 실상이 아님을 알기에 그 착각에 머물지 않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피할 수 없고 유융하기도 한 착각이기에 그것을 그저 '거짓'이라며 떠나지도 않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무지란 동일성을 찾는 빛 속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무지는 자신이 세상의 실상ㅇ르 보지 못하고 있음을 모른다. 반대로 세상을 잘 보고 있다는, 실상을 잘 알고 있다는 오인을 동반하는 것이란 점에서 이중의 무지다. 이것이 '전도몽상'을 야기하는 이유고, 그것이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 의해 공유되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이 무지는 벗어나기 힘들다. 자신이 무지한 줄 알면 무지를 벗어나려 애쓰겠지만, 모르기에, 아니 세상을 잘 알고 있다고 믿기에 벗어날 생각조자 어려운 것이다.
<불교를 철학하다 p51>
2.
모든 괴로움이 무지에서 온다면, 무지가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근본적 무지로서 필연적 대가이기에 괴로움 역시 필연적이다. 괴롭다는 것은 전도몽상을 야기하는 무지에 기인하는데 무지, 전도몽상, 괴로움이 필연적으로 짝을 이루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괴로움이 없다면 역으로 무지를 깨우칠 수 없다. 그래서 '고집멸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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