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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와 욕망은 같은 것이나 둘의 다른 점은 욕구를 의식하는 것이 욕망이란 점이다.
욕망은 욕구를 통해 무엇을 의식하는지 관찰해본다.
욕망하면 세가지가 떠오른다. 수면욕, 식욕, 성욕.
이 세가지는 다르게 이름 붙이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모두 욕구라는 점에서 같다.
욕구가 잠자리와 만나면 수면욕이고 음식과 만나면 식욕이고 섹스를 할 때는 성욕인 것이니
욕구를 보는 세가지 관점인 것이지 수면욕과 식욕, 성욕이 따로 있지 않다.
따라서 욕구는 무엇을 만나는가의 관점에 따라 명예욕 등등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
욕구가 욕망이 되는 경계는 의식이다.
수면욕이 욕망이 될 때는 좋은 집에 대한 집착이
식욕이 욕망이 될 때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집착이
성욕이 욕망이 될 때는 환타지 섹스에 대한 집착이 따른다.
수면욕은 잠을 자면 충족되는 것으로 좋은 집에서 자야만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식욕, 성욕 또한 마찬가지.
따라서 남들보다 좋은 집, 남들은 못먹는 음식, 남들은 경험하지 못한 섹스가 욕망의 정체다.
즉 욕망은 비교에 대한 충족이지 욕구에 대한 충족이 아닌 것이다.
한편 욕망은 시대가 조성하는 가치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겹쳐져 욕망이 배치된다.
욕망의 배치가 달라지면 욕망의 내용과 형식이 달라진다.
즉 욕망은 변한다.
선호하는 직업, 직업에 대한 욕망이 변하는 것을 보면 시대적 욕망의 배치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욕망은 더 광범위하고 더 미세하게 따져볼 문제이지만
짧게 그 근거를 제시하면 욕구와 구분되는 욕망은 비교를 위한 불만족이 욕구에 덧씌워져 있는 것이며
이때 문제는 비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생사가 있기 때문에 영원히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생사의 순환이 비교를 밑도 끝도 없게 만들기 때문에 욕망은 채워질래야 채워질 수가 없다.
욕구가 아닌 욕망은 모두다 나와 시대가 만드는 욕망의 배치다.
수행자에게 욕망이 없느냐라고 질문을 하곤 하는데,
그렇다. 수행자는 욕망은 제거한다. 그러면서 욕구는 있는 그대로 충실히 행한다.
욕구는 인연을 따라 행할 뿐이다. 밥먹을 인연에 밥먹는다. 잠잘 인연에 잠자고 섹스할 인연에 섹스한다.
욕망을 버리고 욕망을 만들지 않는자가 수행자다.
그는 자신의 욕구에 귀기울일 뿐, 없는 인연을 억지로 만들지 않는다.
욕구는 생명의 본질이다. 욕구가 없다면 죽은 것이다.
대신 욕망은 이와같이 살펴본 바대로 무조건 의심하여야한다.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것은 시대적, 개인적 무의식에 종속돼 산다는 것이니.
역으로 욕망을 통해 시대가 또 나의 업이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심어 주었는지 알 수 있는 계기도 된다.
때문에 욕망이 일면 무조건 멈추고 보아라.
욕망은 나, 즉 몸말맘과 시대와 세계가 버무려진 결과다.
무엇이 나를 욕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면 욕망하도록 버무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멈춰라. 그리고 그 결과를 보라. 나의 거울을.
결과를 결과로 보아야한다.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해 욕망하면
그것이 바로 앞뒤가 뒤집힌, 전도몽상이니.
온전한 나로 살고 싶다면 무조건 멈춰라.
그다음 인연과 욕구로서가 아니라 욕망으로서 일어나는 마음이라면
무조건 참아라. 온힘을 다해 참아라.
그러나 참는 것에 집중해서는 참아지지 않으니
지금 여기, 현재에 마땅한 도리를 즉시 행하라.
그러할 때 인연따라 신나고 재미있는 현재를 살게 된다.
지금도 좋고 미래도 좋은 현재. 그리하여 과거도 좋은 현재.
나의 강령1. 현재에 깨어있으라.
무조건 멈추고 보는 것을 <금강경>이 말하듯 꿈과 같이 그림자 같이 허상으로 보아야한다.
욕망은 앞서 말했듯이 시대와 내가 만든 욕망의 배치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남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생각일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배치일 뿐이다.
남들과 상관없이 내 생각되로 사는 것이 옳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또하나의 배치일 뿐.
결론은 일어나는 모든 욕망이 허상임을 보아야한다.
욕망은 비교를 만족시키려 하고 있다. 그것을 훈련시키고 있다.
욕망을 허깨비로 보아야한다.
허깨비로 볼때 참을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허상으로 보고 탁 놓는다. 그냥 놓는다.
나의 강령 2. 환타지인줄 알아라.
p.s
환타지를 채우면 당시는 만족할지 모르나
그 만족 속에는 독, 불만족이 숨겨져 있다.
환타지가 짜릿할수록 불안한 것이니
곧 짜릿함이 가고 불안함이 현실로 덮칠 것이다.
환타지의 만족은,
환타지가 충족되는 한 만족하고
환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족하는데
환타지인 욕망은 비교의 만족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만족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따라잡을 수 없는 시간이 다 불만족이니
멈춰서 만족하지 않는다면
만족해도 불만족이고 불만족해서 만족하지 못하니
돌고 돔이 끝이 없고 삶이 苦를 벗어나지 못하다.
환타지를 따르려거든 그 과보 또한 기쁘게 감당하고, 만족하라.
그러나 이 소식을 알면 누가 그 과보를 지으려 하겠는가.
독이 숨겨져 있다는 소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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