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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의 고원들

탐욕의 반대, 만족

T1000.0 2012. 11. 30. 07:01

어느 날 오후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 위해 호텔 주차장을 지나다가, 나는 신형 도요타 승용차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오래전부터 그런 차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와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그차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서양 문명 전체가 물질을 얻는 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린 새로 나온 물건이나 최신형 차를 사라는 광고에 집중 공격을 받습니다. 이런 광고의 영향을 피하기는 사실 무척 어렵지요. 우리가 원하는 물건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은 끝없는 욕망과 같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욕망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나는 욕망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욕망들은 긍정적입니다. 행복을 위한 욕망, 이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평화를 위한 욕망, 그리고 세상을 더 조화롭고 인간애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려는 욕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욕망들은 매우 쓸모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지점부터는 욕망은 이성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개 문제를 일으키지요. 나 가끔 백화점에 들르곤 합니다. 난 백화점 구경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물건들을 볼 때마다 내 안에 욕망이 싹트기 시작하고, 먼저 이런 충동이 생깁니다. '그래, 난 이것을 갖고 싶어. 저것도 필요해.' 그리고 나면 두번째 생각이 떠오르면서 난 마음속으로 이렇게 묻습니다. '아, 정말로 이것이 내게 필요한가?' 그 대답은 '노'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 첫번째 욕망을 따른다면, 다시 말해 최초의 충동을 따른다면 얼마 안 가 당신의 주머니는 텅텅 비어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음식, 옷, 집을 원하는 것은 그런 것들과는 다른 차원의 욕망이며, 훨씬 더 합당한 욕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때로는 어떤 사회나 환경에서 사는가에 따라 사람의 욕망이 지나친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차가 있으면 일상 생활에 도움을 주는 선진국에서 살고 있다면, 당신이 차를 갖고 싶다는 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차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는 인도의 가난한 마을에 살면서도 당신은 차를 원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설령 당신이 차를 살 돈이 있더라도 차를 갖고 나면 결국 문제가 생깁닏. 이웃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더 잘사는 나라에 살면서 현재 갖고 있는 차 대신 더 비싼 차를 갖기 원한다면, 그것도 똑같은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나는 얼른 반론을 폈다.

"하지만 충분히 차를 살 만한 형편이 되기 때문에 더 비싼 차를 구했는데,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군요. 이웃보다 비싼 차를 갖는 것이 이웃 사람들에게 문제가 될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질투심 같은 걸 느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새 차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겐 만족과 기쁨을 주지 않을까요?"

달라이 라마는 머리를 흔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자기 만족만으론 그 욕망이나 행동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살인자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엔 만족감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 행동을 정당화시켜주진 않습니다. 모든 부도덕한 행위들, 이를테면 거짓말, 도둑질, 성범죄 같은 것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그 순간엔 만족을 느낍니다. 어떤 욕망이나 행동이 긍정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것이 그 순간에 당신에게 만족을 주는가가 아닙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가져오는 결과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에 있습니다.

당신이 더 비싼 걸 갖고 싶어하는 경우에, 그것이 단지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당신은 마침내 자신이 가질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를 것입니다. 언젠가는 현실에 부딪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계에 부딪쳤을 때, 당신은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지고 말겠지요. 그런 욕망을 따라가면 그 위험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 식의 지나친 욕망은 결국엔 탐욕으로 발전한다고 난 생각합니다. 탐욕이란 기대가 지나쳐 생긴 욕망입니다. 잘 살펴보면, 탐욕은 결국엔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주고 많은 혼란과 문제를 일으킵니다. 탐욕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가지려는 욕망에서 탐욕이 생기지만, 그것을 가진다고 탐욕을 만족시킬 순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마음은 끝없는 욕심으로 변해 결국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만족을 얻기 위해 탐욕을 갖지만, 뜻밖에도 바라는 것을 얻은 뒤에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탐욕의 흥미로운 점입니다.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입니다. 당신이 큰 만족감을 갖고 있다면, 어떤 것을 소유하는가 아닌가는 문제가 안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변함없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각주:1]

 

T1000.0 : 꼬마 아들이 문방구에서 1000원짜리 수갑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을때 나는 그게 정말 필요한지 생각해보라고 하며 사주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꼬마는 며칠 뒤 자기 돈으로 끝내 그 수갑을 샀다. 그런데 정작 나는 경쾌한 스포츠카를 갖고 싶다는 욕망을 추수리기가 어려운데, 꼭 수갑 장난감을 사고 싶은 꼬마의 심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여기 달라이 라마의 말을 듣고 그런 욕망으로부터 편안해지는 길을 알았다.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일거나 행동으로 이어질때 '정말 필요한가?' '순간의 만족이 궁극적으로 가져오는 결과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라고 되묻자. 

한편 소유하지 않고도 만족하는 방법도 있으리라. 만일 람보르기니가 갖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앞의 두가지 물음을 되물어 소유하지 않으나 그 차를 보며 여전히 즐거워하며 그 차에 관한 공부를 한다. 그러면 소유하지 않고도 소유할 수 있다. 왜나면 람보르기니에 대해 충분히 안다면 자신이 지금 소유한 차량으로 그것과 비교해 그 정도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람보르기니라는 명성이 아니라 람보르기니의 성능과 속도 등등의 본질이라면 지금 바로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 마치 태양에 가보지 않고도 태양과의 거리, 온도를 측정하는 과학자처럼.

큰 돈이 없어도 이렇게 람보르기니를 소유할 수 있는 만족감이라면 소나타를 소유하든 정말 람보르기니를 소유하든 어떤 차든 상관없이, 변함없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만족은 소유에서 오는 게 아니라 앎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앎은 늘 새로움의 경험일 수밖에 없고 재미를 느낀다는 것은 알아간다는 것이 아닌가. 다 알게 되면 재미가 없듯이.

소유하고도 알지 못하면 만족하지 못해 더 큰 소유를 원하나 앎이 있다면 더 큰 소유가 필요치 않다. 

고로, 앎이 곧 큰 만족감이다.   

 

 

  1.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p3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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