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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연구

위험에 처한 전쟁기계

T1000.0 2019. 12. 29. 07:51

1.

"국가장치가 전쟁기계를 영유하고, 그것을 '정치적' 목적에 종속시키며, 전쟁을 직접적 목표로 부여하는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천의고원2 206) 이러한 사태가 자본주의와 결부되어 자본 자체가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면 또다시 전쟁의 양상이 변합니다. 전쟁이 적대 국가의 군대뿐만 아니라 인구 전체와 경제 자체를 겨냥하며, 그것을 위해 국민들의 신체와 정신은 물론 경제마저도 전쟁의 요소로 만드는 총력전이 ㄷ탄생하게 됩니다.(천의고원2 296)

2.

만약 전쟁의 직접적 목표를 그 자체로 추구하려는 경향이 독립하면서 국가의 정치적 목적 자체까지도 포섭하는 경우, 전쟁기계와 국가의 관계는 하나의 역전된 양상을 보여주게 됩니다. 즉 국가에 의해 영유됨으로써 전쟁을 '분석적' 목표로 하게 된 전쟁기계가, 국가의 정치적 목적마저 자신의 목표 아래 종속시킴으로써 오직 전쟁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무제한적 과정을 야기하는 것. 저자들은 비릴리오를 따라 이런 사례를 나치나 그밖에 그와 유사한 파시즘의 경우들에서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는 세계적 전쟁기계의 하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포스트파시즘의 형상인데, 이는 평화를 직접적인 목표로 취하지만 공포와 억압에 의해 유지되는 평화로서, 총력전보다 더 훨씬 공포스런 평화지요. 다시 말해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심지어 핵폭탄까지 만들어내는 그런 종류의 전쟁 말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바다를 이미 제압하고 있는 '현존함대', 지구의 모든 지표면을 감시하며 지구 둘레를 도는 군사요 인공위성들, 혹은 한때 대대적으로 진행되던 '별들의 전쟁' 계획, 아니면 언젠가 평화를 깨며 날아들 '어떤' 미사일을 분쇄하기 위한 미사일 방어체제 등등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직접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전쟁 그 자체의 승리를 위한 과제와 목표 들입니다.

3.

알다시피 이러한 무기체제나 전쟁체제는 그것을 이용해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힘의 우위, 전쟁능력의 우위, 혹은 좀더 완전한 전쟁능력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전쟁기계의 목표고, 이를 위해 국가가 대규모의 자금과 인력을 동원하게 될 겁니다. "정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계속이다."
이러한 양상은 냉전 시대의 미국이 잘 보여주는데, 소련의 붕괴로 '적'이 사라진 이후에는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테러리즘을 새로운 적으로 설정하여 군비와 전쟁체제를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9.11테러 이후 미국은 이러한 노선을 좀더 노골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전 세계 인민들의 삶은 위로는 인공위성, 아래로는 비밀스런 정보활동과 공작의 일상적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현재의 상황은 매우 비관적"(천의고원2 207)이며, 전쟁기계는 암울한 색조를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에 의해 영유되어 전쟁을 직접적-'분석적' 목표로 하게 된 전쟁기계가 국가의 층위를 넘어서 나아가고, 심지어 국가장치를 그 목표 아래 종속시킴에 따라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것이 거꾸로 전쟁이나 전쟁기계 자체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으로 보게 하는 현실적 조건인 셈이고, 애초에 전쟁기계라는 개념을 사용하려는 시도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든 이유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하게 국가장치에 의해 변성된 전쟁기계, 전쟁만을 목표로 하는 전쟁기계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전쟁기계의 '순수한' 개념보다는 전쟁 자체의 '순수한' 개념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노마디즘2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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