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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지금 여기서의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이며, 지켜보는 힘이 커지면 생각에 따라가지 않고 생각의 흐름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욕을 들으면 기분 나쁜 감정이 일어납니다. 욕이라고 하는 개념[고정화]과 그 욕을 통해서 기분 나빠지는 감정[갈등]으로 동요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수행을 계속하면 욕을 듣고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게 되니, 순간적으로 욕과 상응하여 일어나는 마음의 동요를 알아차리게 되고 이 힘에 의해서 곧바로 고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삶을 여실히 지켜보는 힘이 생기면서 분별하는 힘이 약해지면 고요한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이 힘이 켜져 무아를 여실히 알게 되면 보살의 분청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아가 모든 번외의 종자까지도 청정하게 되어 언제 어느 곳에서나 앎이 청정한 부처님의 경지인 만청정을 이루게 됩니다.
만청정자나 분청정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본질인 연기실상이 청정한 흐름이기 때문이며, 이 흐름이 유식성입니다.
유식성이 우리 삶의 본질이므로 우리는 누구나 만청정자나 분청정자가 되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났을 때가 모든 유정이 이롭게 된 때입니다. 유식성 곧 우리 삶의 본질이 청정성이기 때문에 중생의 분별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그 바탕이 허망한 고[苦]는 소멸하게 됩니다. (30)
T.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우리 삶의 본질인 유식성은 자연 또는 신의 관념과 일치하는 '이성'으로, 연기실상이 청정한 흐름은 '신 즉 자연'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유식성이 우리 삶의 본질이므로 누구나 해탈할 수 있으며, 누구나 평등하며,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 '지켜보는 힘'은 사유의 '힘'이 커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스피노자식을 말하면 보다 타당한 관념이 많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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