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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삶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인, 앞에서 말한 여섯 세계를 놓치지 않고 잘 관찰하면,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고정된 틀을 알게 되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속에 열린 세계가 항상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법화는 늘 '만남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며, 이 또한 앎의 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앎이 있는 곳에는 항상 '닫힘과 열림이 더불어' 있습니다. 닫힘, 즉 중생이 있는 곳에 열림, 즉 부처님의 세계가 있습니다. 고정화된 언어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서, 만남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흐름[연기]을 여실히 보아야겠습니다.(27)
2.
<있음에서 함으로> p47
마뚜라나 처음에는 분리를 체험합니다. 이러한 체험은 결국엔 연결됨의 통찰로 바뀝니다. 물론 나는 내가 서술하고 있는 대상의 일부가 아닙니다. 여기 탁자 위에 있는 유리잔을 가리키는 경우, 나는 그 유리잔의 일부가 아닙니다. 하지만 유리잔을 구분해 내는 것은 나와 관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것을 서술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 구분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또는 그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아무도 이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환경으로부터 특화되어 있고 분리되어 있는 물질적인 실체 또는 관념적인 실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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