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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정리 23. 인간의 정신은 신체와 함께 완전히 파괴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중의 영원한 어떤 것이 존속한다.

 

증명: 신 안에는 인간신체의 본질을 표현하는 개념 또는 관념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정리 22에 의해). 그러므로 이 개념 또는 관념은 필연적으로 인간 정신의 본질에 속하는 '어떤 것'이다(제2부 정리 13에 의해).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정신에 대하여 그것이 '지속에 의하여 설명되고, 시간에 의하여 한정될 수 있는 신체의 현실적 존재'를 표현하는 한에 있어서가 아니면 시간에 의하여 한정될 수 있는 지속을 부여하지 않는다. 즉 (제2부 정리 8의 계에 의해) 우리는 인간의 정신에 대하여 신체가 지속하는 동안이 아니면 지속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떤 것'은 신의 본질 자체를 통해서 어떤 영원한 필연성에 의하여 파악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리 22에 의해), 정신의 본질에 속하는 이 어떤 것은 필연적으로 영원할 것이다. Q.E.D

주석: 우리가 말했듯이, 신체의 본질을 영원의 상(象) 아래에 표현하는 이 관념은 일정한 사유의 양태인데, 이것은 정신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며, 필연적으로 영원한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가 신체 이전에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신체 안에 그것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있을 수 없고, 영원성은 시간에 의해 정의될 수 없으며 시간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을 느끼고 경험한다. 왜냐하면 정신은 지성에 의해 파악한 것들을 기억 속에 가지고 있는 것들과 똑같이 느끼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사물을 보고 관찰하는 정신의 눈이 증명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체 이전에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신이 신체의 본질을 영원의 상 아래에 포함하는 한에 있어서 우리의 정신은 영원하다는 것, 그리고 정신의 이러한 존재는 시간에 의해 정의되거나 지속에 의하여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느낀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신은 신체의 현실적 존재를 포한하는 한에 있어서만 지속한다고 일러질 수 있으며, 그러한 한에 있어서만 그것의 존재가 일정한 시간에 의하여 한정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한에 있어서만 그것은 사물의 존재를 시간에 의하여 결정하고, 사물을 지속 아래에서 파악하는 능력을 가진다.   

 

 

T1000.0 : 영원성은 무엇인가? 이런 게 아니겠는가! "청정한 마음 바탕은 태어나고 죽는 것도 없으며 가고 옴도 없네" 

청정한 마음은 신체와 함께 완전히 파괴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중의 영원한 어떤 것이 존속한다.

 

 

혜능 대사께서는 선천 2년 8월 3일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일년 전인 선천 원년에 신주 국은사에 탑을 세웠다. 그리고 선천 2년 7월에 문인들을 불러서 마지막 작별을 하였다.

 

혜능대사 : 가까이 오게. 다음 달이면 내가 세상을 뜰 것 같네. 물어 볼 것이 있으면 물어 보게. 그대들의 의심을 해소해 헤매는 일이 없게 하고 평안하게 해 주고 싶네. 내가 간 후에는 그대들을 가르칠 사람이 없겠지.

 

법해 등 여러 스님들은 그 말을 듣고서 슬피 우는데, 오직 신회 스님만이 움직이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혜능대사 : 신회는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좋고 나쁜 일에 평등한 마음을 얻어 비난과 칭찬에 움직이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는 구나. 여러 해 동안 산중에서 도를 닦았는데 무슨 도를 닦았으며, 슬피 우는데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우는가? 내가 갈 곳을 모를까봐 근심하는 것인가? 내가 갈 곳을 모른다면 오늘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하겠는가? 그대들이 슬피 운 것은 내가 갈 곳을 그대들이 몰라서 그럴 것이니, 내가 갈 곳을 안다면 울지 않으리라. 청정한 마음 바탕은 태어나고 죽는 것이 없으며 가고 옴도 없네.(정화스님, <육조단경> p236)

 

 

혜능대사 : 이제 그대들과 헤어질 시간이네. 앞으로 잘 지내게. 내가 죽고 나거든 세상 사람들처럼 감정에 치우쳐 슬피 울지 말고, 사람들의 조문과 금전도 비단도 받지 말고, 상복을 입지도 말게. 그것은 성스러운 법도가 아니며 그렇게 한다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네.

단지 내가 평소에 하던 대로 잠시 동안 단정히 앉아서, 움직이지도 않고 고요하게도 하지 않으며, 일어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옮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떠나감도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적정하게 보낸다면 이것이야말로 크나큰 법도를 실천하는 모습이네.

수행을 잘 해 나간다면 내가 살아 있는 날과 다름이 없으나, 내가 살아 있다고 해도 그대들이 돈교의 법문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내가 머무르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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