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것으로써 나는 감정에 대한 모든 요법, 즉, 그 자체로만 고찰된 정신이 감정에 대하여 할 수 잇는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다루었다. 이것으로부터 감정에 대한 정신의 능력은 다음의 점에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1. 감정의 인식 그 자체에(정리 4의 주석 참조)

2. 우리가 혼란하게 표상하는 외부의 원인의 사상(思想)에서 감정을 분리하는 것에(정리 2와 정리 4의 주석 참조)

3. 우리가 [타당하게] 인식하는 사물에 관계되어 있는 변용[감정]은 우리가 혼란하게 또는 단편적으로 파악하는 사물에 관계되어 있는 변용[감정]보다 시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에(정리 7 참조).

4. 사물의 공통적 특성 또는 신에 관계되어 있는 변용[감정]을 육성하는 원인이 다수라는 것에(정리 9와 11참조)

5. 마지막으로, 정신이 자기의 감정들을 질서 있게 정리하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그 질서에(정리 10의 주석과 정리 12,13 및 14도 참조).

 그러나 감정에 대한 정신의 이러한 능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주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한 사람의 감정을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하여 같은 감정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사로잡히는 것을 볼 때, 또는 우리가 동일한 사람의 감정들을 서로 비교하여 그 사람이 하나의 감정으로 인해 다른 감정으로 인해서보다 더 많이 자극받아 변화되고 감동되는 것을 알 때 그 감정을 강렬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제4부 정리 5에 의해) 각각의 감정의 힘은 우리의 능력과 비교된 외부 원인의 힘에 의하여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의 능력은 인식에 의해서만 한정되는 반면, 정신의 무능력 또는 수동은 오로지 인식의 결핍에 의해서, 즉 타당하지 못한 관념이 타당하지 못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에 의해서 판정된다.

이것으로 부터 나오는 결론은 이러하다. 즉 자체의 가장 큰 부분이 타당하지 못한 관념들로 구성되어 있는 정신은 가장 수동적이어서, 그것이 작용하는 것보다 그것이 작용받는 것에 의해서 더 많이 식별된다. 이에 반하여 자체의 가장 큰 부분이 타당한 관념들로 구성되어 있는 정신은 가장 능동적이어서, 그것이 비록 다른 정신과 같이 많은 타당하지 못한 관념들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인간의 무능력을 나타내는 타당하지 못한 관념들에 의해서보다 인간의 덕에 속하는 타당한 관념에 의해서 더 많이 식별된다. 또 주의해야 할 다음의 것이 있다. 마음의 병과 불행은 특히 '많은 변화에 종속되는 것이며 우리가 결코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과도한 사랑에서 생긴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는 않으며, 또한 불법, 의심, 적의 등은 아무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사랑에서만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뚜렷하고 명확한 인식이, 특히 신에 대한 인식 자체를 기초로 하는 제3종의 인식(제2부 정리 47의 주석 참조)이 감정에 대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쉽게 파악한다. 이러한 인식은 수동적인 한에 있어서의 감정들을 절대적으로 제거하지는 않을지라도(정리 3과 정리 4의 주석 참조), 적어도 그 감정들이 정신의 최소부분을 구성하게끔 한다. 또, 그것은 우리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제2부 정리 45 참조), 불변하며 영원한 것(정리 15 참조)에 대한 사랑이 생기게 한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보통의 사랑에서 발견되는 어떠한 결점에 의해서도 더럽혀질 수 없고, 오히려 항상 점점 더 커질 수 있으며(정리 15에 의해), 정신의 최대부분을 차지하여 (정리 16에 의해),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으로써 나는 현재의 생활에 관한 모든 것을 완료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이 주석의 첫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간결한 설명 안에서 나는 감정에 대한 모든 요법을 총괄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 주석의 내용에, 동시에 정신 및 그것의 감정들의 정의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3부의 정리 1과 3에 주의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신체에 관계없이 정신의 지속에 관한 문제들을 옮겨갈 때이다.[각주:1]  

 

T1000.0 : 인간의 무능력을 나타내는 타당하지 못한 관념은 불교의 "무지"와, 수동적인 한에 있어서의 감정들을 절대적으로 제거하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그 감정들이 정신의 최소 부분을 구성하게 끔하는 제3종의 인식은 불교의 "깨달음"과 회통한다. <에티카>와 불교의 회통을 통해 에티카와 불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긍극적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구체적인 인식을 하게 해준다.  

 

 

  1. <에티카> p321 [본문으로]

'스피노자의 <윤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색수상행식  (0) 2013.06.06
윤5. 불사(不死) 혹은 영원성  (0) 2013.06.06
선악 너머의 자유  (0) 2013.06.05
무지에서 앎으로  (0) 2013.06.05
쾌감과 고통에 대해  (0) 2013.06.04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