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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편이 급한 친구가 있어서 그에게 백만 원을 도와주었습니다. 그가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니고 내가 자진해서 호의를 베풀었는데도 내 마음에는 '내가 너를 도와줬다'는 생각이 남아 있는게 보통입니다. 반대로 내가 형편이 어려워 친구에게 백만 원을 빌려 썼다면 나중에 돈을 갚으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내가 그에게 백만 원을 주었다는 생각이 남지 않습니다. 그 돈은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으니 당연합니다. 그의 돈을 그에게 돌려준 것뿐이니까요.
2.
이렇게 그 돈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줄 알면 돈을 주고도 주었다는 마음이 일어날 여지가 없습니다. 그 돈이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내가 그에게 돈을 주었다는 마음이 남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준 뒤에 도와줬다는 생각이 자꾸 떠오르느는 것은 '내 것'이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3.
하지만 세상 만물은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다만 지금 거기에 존재할 뿐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실상을 깨치면 남을 도와주고도 도와줬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4.
그런데 빚 갚는 마음으로 내어주라는 말은 사실은 하나의 방편일 뿐입니다. 내 것이 아닌 이치를 분명히 알면 '빚을 갚는 것'이라는 식의 생각 같은 건 애초에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자꾸만 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빚을 갚는다는 생각을 해서라도 내 것임을 고집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베푼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모든 게 내 빚이다. 전생에 신세 진 일을 깜빡 잊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거운 기대감에 발목 잡히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5.
하지만 근본은 내 것이란 본래 없다,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는 구분은 다 내 생각이 지어놓은 상이라는 데 있습니다. 내 것이다, 네 것이다. 깨끗하다. 더럽다. 높다. 낮다, 사라진다. 만법이 다 생각 따라 마음 따라 일어납니다. 이 이치를 깨닫고 집착을 버릴 수만 있다면 마음은 금세 편안해집니다. 그 실상을 깨친 자리에는 일체 번뇌가 자리할 수 없습니다.
(금강경 강의 3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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