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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운동에서 그런 (묶여 있음의) 이념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세계와 묶여 있음을 느끼는 것은 세계, 우주, 천체에 녹아드는 것과 같은 그러한 신비적 체험에 대한 묘사에서 보게 되는 표상이기도 하니까요.

 

제게는 그러한 신비적 체험들이 결코 신비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그런 체험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에게도 일상적인 그런 체험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서 보지 못하고 끊임없이 지나쳐 버리는, 중단 없이 진행되는 세상의 수수께끼와 기적을 지각하기 위해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소위 신비가에게는 일상의 삶이 놀라운 것도 아니고 기적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신비가는 존재의 놀라움을 뭔가 특별한 것으로 평가하기 위해서 좀 물러서 있어야 합니다. 또 '세상에, 나는 지금 신비적 체험을 했어! 지금 나는 어떤 현상을 봤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일상을 별다른 놀라움으로 보지 않는 그런 신비가는 물러서야 합니다. 제게는, 세상이 늘 매순간 수많은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사람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습니다. (발명품 262)

2.

원효는 해골바가지 물을 마셨다가 토했을 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원효가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토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면서 왜 못 깨치느냐 물으면 "아직 해골바가지 물을 못 마셨어요. 요새는 무덤이 없잖아요. 무덤이 있으면 저도 들어갈래요." 이럽니다.이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깨달음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곳마다 거기에 있어요. 그것을 알아차리느냐 알아차리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세세생생 육도를 윤회하며 해맬 수도 있고 단박에 깨달아 해탈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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