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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장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물음을 결정할 때면 언제나 형이상학자들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렇게 명명하고 안하고는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실존재의 흐름 속에서 영원히 그렇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논리적 구조나 관찰할 수 없음 등으로 인해서) 분명히 설명이 되지 않는 결정할 수 없는 물음을 계속 반복적으로 결정합니다. 누군가 과거에 대해서 얘기할 때조차도 그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서술에 표를 던집니다. 그는 사실이 어땠는지 모릅니다. 그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만 알뿐이지요. 

 

우리가 과거에 대해서 얘기할 때 우리는 늘 우리의 구성물에 대해서만 말할 뿐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모든 역사 그리고 과거의 모든 사건은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기술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게 일어난 일에 대한 바른 서술이고 정확한 서술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과거란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의해서 언어의 도움을 통해 서술될 수 있을 뿐입니다. 있었던 것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의 미국 역사 교과서를 서로 비교해 보면 정말로 웃깁니다. 외양상 똑 같은 동일한 사건을 다루는 역사가 모두 서로 다릅니다. 사람들에게, 이 경우 그런 교과서를 쓴 저자들에게, 자기들 스스로가 있었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결정을 했다는 사실이, 항상 의식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가 이런 종류의 결정을 늘 내리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저는 심지어 결정할 수 없는 물음이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분명히 증명해 줄 그러한 실험이 발견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도 결정할 수 없다고 조차 말하고 싶습니다. 결정불가능성의 문제는 2차 수준의 차원에서 조차 해결되지 않습니다. (발명품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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