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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생님이 서술하는 입장은 단지 우연적인 편애인가요. 아니면 실제 그 이상인가요? 그것은 이론의 살아 있는 합체의 표현이 아닐까요? 수면 아래로 흐르는 선생님의 생각은 현실성과는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선생님은 - 직접적인 연관없이, 구체적인 얽힘없이 - 모든 지식의 기저에 놓인 가능성의 조건들을 서술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이러한 관찰하는 아웃사이더의 역할을 연기하는 사람들은 가장 공평한 종류의 삼중보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그들은 체계의 내부를 보고 그것의 구성요소들과 그것들의 상호작용들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2)그리고 여전히 그 체계가 상호관계들의 영역 속에서 하나의 전체로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3)그리고 어떻게 이 영역이 이번에는 '메타 영역' 안에서 내적인 관계들의 영역과 관련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식으로 관찰한다면 무엇을 보게 될까요?
당연히, 우리는 어떤 객관적으로 주어진 실재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건 명백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적실한 이해를 획득하게 됩니다.(함으로 253)
2.
일부 사람들은 관찰자의 이 거리를 둔 견해를 무관심의 형태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러한 태도에 감정적으로 채색된 딱지를 붙입니다. 그들은 무관심을 공격함과 동시에 연루를 요구합니다. 내 견해로는, 관찰자들은 무관심한 것으로도 연루적인 것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참여 형태를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관찰자들이 그들 자신의 야망들과 특정한 결과를 성취하고자 하는 희망에 의해 영향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관찰자가 어쨌든 무엇인가 지각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무언가를 보고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무언가가 일어나도록 놓아두고, 그 무언가가 스스로 나타나도록 놓아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해를 가능케 해주고, 사랑에 기초한 이러한 종류의 지각을 위한 모토는 바로 '그냥 내 버려둬!'입니다. (255)
아웃사이더의 이 태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선생님의 일상적인 연구 작업에서 예를 하나 보여줄 수 있습니까?
짧은 얘기를 하나 들려주겠습니다. 어느 날 나는 비행 방법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실험실에서 비둘기들의 시각 과정들을 연구하고 있었고, 이 새들이 공중에서 세계를 어떻게 체험하는지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글라이더 조종사들을 위한 학교에 출석해서 훈련을 시작했을 때, 나는 비행장에서의 통상적인 교환들에 본의 아니게 참여하는 아웃사이더의 역할을 다시 맡았던 것입니다. 내 목표는 역시 터무니없이 보였고, 또 이상하게 별나 보였습니다. 누가 새를 이해하기를 원했겠습니까?(255)
T.
3중 보기는 '있는 그대로 보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있는 그대로 보기를 나는 연기적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보는, 한 면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보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한편으로 이런 '있는 그대로 보기'는 일어난 일은 모두 잘된 일이다란 시선이 필요한데 이는 '그냥 내버려 둬'의 태도로 드러날 수 있다. 내가 본 어느 다큐에서 고김수환 추기경은 당시 창녀로 통하는 매춘 여성을 위로하면서 그 일을 그만두라든지, 거기서 나오라든지의 충고없이 그저 경청할 뿐 그냥 내 버려두었다한다. 그야말로 사랑에 기초한.
"이것이 바로 관찰자가 어쨌든 무엇인가 지각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무언가를 보고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무언가가 일어나도록 놓아두고, 그 무언가가 스스로 나타나도록 놓아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해를 가능케 해주고, 사랑에 기초한 이러한 종류의 지각을 위한 모토는 바로 '그냥 내 버려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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