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곧 명사인 무엇의 생멸이 아니라 동사인 생멸의 쉼없는 무엇 되기가 진여,공의 끊임없는 자기 변화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그대로 진여,공의 표현인 것에서의 생멸입니다. 이를 <반야심경>에서는 색 그대로 공이며 공 그대로 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고정된 대상 없이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바꿔말하면 인식이 대상을 고정하면서 실체를 만들기 때문에 생멸 그대로 불생불멸인 진여를 잃고 생상相(생의 명사화)과 멸상(멸의 명사화)을 갖게 됩니다. 그리하여 진여인 무상의 흐름이 시공의 제한적 인식으로 업화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지 못하고 결정된 상相, 곧 자성을 갖게 됩니다.
자성을 갖게 되면서 마음이 닫히게 되고 번뇌가 뿌리를 내립니다. 여기에서 생도 없고 멸도 없는 시간 밖의 영원성만을 세우게 되고 현실의 삶이 그 진정한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러자 자성을 갖지 않는 생멸의 덧없는 찰나가 그대로 공성의 자기표현일 때, 지금 우리의 일상이 해탈의 모습으로 긍정되면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선禪의 표현이 됩니다.(법성게 87)
'정화스님의 <법성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엄경의 네 가지 법계 (0) | 2021.01.23 |
---|---|
열반적정 (0) | 2021.01.23 |
무분별지 (0) | 2021.01.23 |
연기의 경험치 (0) | 2021.01.23 |
연기중도 (0) | 2021.01.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