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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경계에 대한 통속적이고 지배적인 견해를 따르면 신경계란 유기체가 환경에서 가져온 정보들로 세계에 대한 표상을 만들고 또 이것을 바탕으로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계산하는 데 쓰는 도구다. 이 견해에 담긴 가정에 따르면 환경 자체의 특징들이 신경계에 입력되면 신경계가 이것들을 이용해 행동을 산출한다. 그러나 이미 살펴보았듯이 신경계란 유기체의 일부로서 구조에 따라 작업할 뿐이다. 따라서 환경의 구조는 신경계에 변화를 유발할 뿐 그것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관찰자인 우리는 신경계와 환경의 구조를 함께 살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신경계가 환경에 대한 표상들을 가지고 작업하여 유기체의 행동이 생기는 것처럼 또는 마치 행동이 어떤 목표지향적인 과정의 산물인 것처럼 기술할지 모른다.[목적인의 환상] 그러나 이런 기술은 신경계의 작업방식 자체를 반영하지 않는다.[무지] 이런 기술은 관찰자인 우리들 사이의 의사소통에는 유용하지만 과학적 설명으로는 불충분한다.[전도몽상]

2.

우리의 일상경험을 돌아보며 잠깐 곰곰이 생각하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환경에서 '정보'를 가져와 그것을 '안에서' 모사한다는 식의 비유를 써서 우리의 경험을 기술할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주장한 것들을 통해 분명해졌듯이 이런 비유를 쓰는 것은 생물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과 모순된다. 어쩌면 이것은 진퇴양난의 상황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신경계가 표상을 가지고 작업한다는 견해를 부정하면 우리 주위의 현실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신경계가 주위 세계에 대한 표상을 가지고 작업하지 않는다면(또 작업할 수 없다면) 인간과 동물의 비상한 작업효과와 학습능력, 또 세계를 조작하는 뛰어난 능력은 어떻게 가능할까? 만약 인식해야 할 객관적 세계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임의로 가득 찬 혼돈에 빠지지는 않을까?[방법은, 여몽환포영]

3. 여몽환포영의 중도

이것은 마치 줄타기 곡예와도 같다. 줄의 한쪽에 도사린 위험은 정보를 제공하는 객체들의 세계를 가정함으로써 인식현상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정보'를 가능케 하는 기제가 실제로 없기 때문이다.[존재론] 다른 한쪽에는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제멋대로 해도 될 것 같은 비객관성와 임의로 가득찬 혼돈이다.[유아론] 우리는 그 중간에 머무는 법, 줄 자체를 타는 법을 배워야 한다.[여몽환포영]

4. 나는 누구인가? 안을 돌아보는 물음.

신경계가 세계에 대한 표상을 가지고 작업한다는 가정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신경계가 작업적 폐쇄성을 지닌 결정된 체계로 매순간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가능성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행위이다. 우리는 이 점을 다음 장에서 분명하게 설명할 것이다.
다른 한쪽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이 가능하고 타당한 진공상태에서 신경계가 작동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주위 환경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것은 절대적인 인지적 고독, 곧 유아론의 극단이다. (유아론이란 오로지 자기의 내면세계만 존재한다고 주장한 고전적인 철학전통이다.) 이것이 함정인 까닭은 이 경우에 유기체의 작업과 환경 사이의 조화 또는 양립가능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극단 또는 함정은 인식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함께 있어왔다. 요즘은 표상주의라는 극단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유아론적 관점이 우세했던 적도 있었다. (앎의 나무 154)

5.

연기와 공의 균형을 맞추려면 '고정된 실체로 스스로 존재하는 것'과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것'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불교의 위대한 현자들이 공의 원리를 가르칠 때 '현상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현상은 연기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다고, 즉 자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공을 이해하면 양극단[상주론과 단멸론]을 모두 피할 수 있습니다. 공을 깨달음으로써 현상이 고정된 실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극단을 피할 수 있고, 현상이 연기에 따라 일어나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현상의 작용을 부인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극단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마음 길들이기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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