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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홍길동의 현상은 나고 죽는 모습 속에 있으나 이는 인연화합의 잠시 모습일 뿐이며 무상, 무아의 삶은 그 자체로 우주의 총체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곧 개별자 홍길동은 우주의 부분이 아닌 우주 그 자체입니다.
만일 홍길동이 우주 자체가 아니라면 우주에서의 홍길동은 단지 부분일 것이고 이때에는 부분과 전체, 부분과 부분은 단절을 뜻하게 되어 단멸상이 되거나, 부분 없는 전체도 가능하게 되어 전체의 상주도 이야기할 수 없게 된다고, 현수 법장 스님께서는 <화엄일승교의 분제장>에서 써까래와 집의 관계를 보기로 들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비추어 봐도, 홍길동이 있음으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존재할 수 있고 홍길동이 없음으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제 오늘도 쉬지 않고 많은 존재들이 태어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 자신을 보면 늘 있는 대로 있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각은 늘 동일한 모습을 대상으로 해야만 인식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깊은 수행으로 시공의 제한된 동일영역을 설정해 놓고 사물, 사건을 파악하고 있는 의식을 넘어설 때, 우리는 홍길동 한 사람의 태어남에서 새로운 우주의 태어남을 볼 수 있고 홍길동 한 사람의 죽음에서도 한 우주의 죽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태어남은 죽음과 같이하고 죽음은 태어남과 같이하는 생멸동시의 변화들이 무한히 겹쳐진 우주, 곧 중중무진법계연기를 볼 것입니다. (법성게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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