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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해지는 모든 것이 우리에 의해 말해지는 것이고 또 우리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리는 객체들을 우리와 구분되는 것으로 체험할 수 있는가?(함으로 66)
2.
우리는 그와 같은 절대적 실재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와 동시에 '그것[물자체]을 알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불합리한 개념적 곡예입니다. 하지만 내가 '말해지는 모든 것은 관찰자에 의해 말해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할 때, 나는 또 다른 핵심적인 질문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실재, 진리,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전통적인 철학적 담론 체계를 변화시킵니다. 이 질문은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되는, 그리고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외부 실재의 연구와는 더 이상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관찰자로 작동함으로써 관찰자의 작동들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언어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언어를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요컨대 우리 자신의 바깥에서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것에 우리가 접근할 길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42)
3.
우리가 일상적인 체험을 하는 가운데 여러 사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우리가 지각하고 다루는 그 사물들이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히 함축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외부의 관점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결국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관찰자들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어떤 것을 그것이 마치 자신들과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구분하는 인간들이다.' 그래서 이제 이 체험이 설명되어야만 합니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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