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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생님의 작업이 신념의 이론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요법적 의미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유명한 치료사가 선생님의 작업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시명령적 간섭의 신화를 던져 버렸기 때문에, 구성주의적 치료사들은 자기 환자들의 건강의 증진과 치료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던져버려도 좋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겠죠. 설령 환자가 악화되더라도 치료사들은 결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치료사들이 어떠한 비판적인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정당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더 자세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말하고 행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해, 그들이 나의 행위들과 발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또는 해석하는지에 대해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듣는 것을 듣고, 자기들이 이해하는 것을 이해하며, 자기들이 하는 것을 합니다. [T1000.0 그것은 그들의 문제, 그들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어떤 발언이나 행위가 - 성공적인 간섭으로 인해 - 어떤 개인 안에 바로 그 의도된 결과를 낳았다 - 그래서 어쨌든 우리가 이제 책임을 떠맡야야만 한다 - 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당신이 인용한 그 필자에 동의합니다.


2.
하지만 이것은 동전의 한 면일 뿐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행위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는 없지만 내 자신의 이해에 따라 내가 말하고 행하고 있는 모든 것에는 틀림없이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들의 영역에서, 또 체계적 네트워크에서 내가 초래한 모든 것에도 마찬가지로 책임이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어쩌면 그들을 기만하거나 속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이한 의도들은 상이한 종류의 행위를 낳습니다.

선생님이 요법학계에 대해 정식화할 핵심 요구는 다음과 같은 것이 되겠군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 결정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러나 당신이 무엇을 하건 간에 그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선언하라.'

바로 그겁니다.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할 수 없다고 깨닫게 된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위들이 갖는 성질이 그들[자기들]의 지혜의 범위에 달려 있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됩니다. 치료사들의 지혜란, 편견 없이 경청할 수 있는, 그리고 '개방성과 무간섭'의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그들의 능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게 나의 주장입니다.
(함으로 189)


3.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종류, 즉 알로 나는 것, 태로 나는 것, 습기로 나는 것, 화하여 나는 것, 빛이 있는 것, 빛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을 내가 다 완전한 열반에 들게 제도하리라.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수가 없고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되 실로 제도를 받은 자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이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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