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우리 이야기를 따라가면 생물학적으로 보아 의사소통에 '정보의 전달'이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구조접속의 영역에서 행동조정이 나타날 때마다 의사소통이 있다.
이 결론은 충격적으로 들린다면 그 까닭은 의사소통에 대한 가장 인기 있는 비유이자 이른바 의사소통매체가 유행시킨 '도관'의 비유를 좀처럼 의문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 따르면 의사소통이란 어떤 곳에서 생겨서 어던 도선(또는 도관)을 따라 중계되어 다른 곳으로 전달되는 어떤 것이다. 곧 전달되는 어떤 '것'이 있고, 이것은 도관을 따라 중계되는 것 안에 들어 있다. 사람들이 흔히 그림이나 물건, 인쇄된 낱말 따위에 '정보'가 들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 분석에 따르면 이 비유는 처음부터 틀렸다. 왜냐하면 이 생각은 구조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 개체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개체에게 상호작용이란 명령의 성격을 띈다. 다시 말해 상호작용하는 어떤 체계에게 일어나는 일이 체계의 구조적 역동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섭동작용을 일으키는 것에 따라 결정됨을 뜻한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음은 일상에서조차 뻔하다. 누구든지 자기 구조에 따라 결정되는 대로 자기가 말하는 것을 말하고 자기가 듣는 것을 듣는다. 누가 무엇을 말했다 하여 다른 누가 그것을 들으라는 법은 없다. 관찰자의 관점에서 보면 의사소통적 상호작용에는 늘 다의성이 있다. 의사소통 현상은 무엇이 전달되느냐가 아니라, 수신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냐에 따라 좌우된다. 그리고 이것은 '정보의 전달'과 거의 관계가 없다.
(앎의 나무 222)
T.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의 불가능성은 청자의 해석학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행동의 조정은 구조접속의 영역에서 행동조정이 나타날 때마다 의사소통이 있다. 즉 행동 조정 나타나는 과정은 지시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수신자에게서 섭동에 의한 구조적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시 명령을 해석할 수 없는 수신자는 행동의 조정을 이룰 수 없다. 수신자가 복종을 결정할 때 지시 명령의 행동 조정이 나타날 것이다.
2.
정보는 신호를 가지고서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서 생겨납니다. 제 생각에 정보란 지각하는 의식 밖에 존재하는 사용대상이 아닙니다. 책, 신문,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 교통표지판 등은 그러니까 정보를 갖고 있지 않고 다만 잠재적인 정보의 운반자일 뿐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구분입니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역경>은 단지 흰 종이 위에 있는 기묘한 닭발들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냥 있는 그대로 입니다. 이는 특정한 교통표지판을 보거나 붉은 신호등을 보더라도 우리가 운전면허증을 딴 사람이라야 우리에게 그 신호들이 브레이크를 밟고, 중립기어를 놓고 차를 세우게 만드는 정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신호를 정보로 바꾸는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 속에서 진행되는 연산작용입니다. (발명품 155)
3.
이 예를 해석하자면, 이해와 파악은 어떤 사람이 자신이 속한 문화나 유산에 기반하여 이미 알고 있고 기대하고 있는 것과 말해진 것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형식으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위의 예를 가지고 말하자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했던) 설명의 방법 혹은 방식이 그 아프리카 학생이 설명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형식에 맞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 학생에게 익숙했던 구문론적 구조의 설명이 행해졌을 때 비로소 그는 이해를 하게 된 것이고요.
감사합니다.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네요. 저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해나 의미를 체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당신이 아주 멋지게 기술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당신이 필요로 했던 바로 그것을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받아들어질 만한 설명, 당신에게 하여금 이해를 이해하게끔 만들어 주는 그런 설명을 해냈습니다. 위의 일화에 대한 당신의 해석은 제가 정리했던 해석학적 원리에 대한 멋진 보기입니다. 제가 정리한 바 있던 해석학적 원리는 '화자가 아니라 청자가 (화자에 의해 행해진) 진술의 의미를 규정한다'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화자가 어떤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고 청자는 화자가 말한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아주 근본적인 잘못입니다. 저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소리를 해석하여 그 소리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청자입니다. (발명품 158)
'어떻게 살 것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작/불수자성 수연성/자유 (0) | 2020.12.23 |
---|---|
중도를 깨달은 사람들의 태도 (0) | 2020.12.20 |
나는 누구인가? (0) | 2020.11.20 |
인과적 설명에서 벗어난 삶[불수자성 수연성] (0) | 2020.07.05 |
욕구대로 사는 삶 (0) | 2019.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