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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통(횡단)학

해탈과 유목민

T1000.0 2013. 5. 9. 18:44

1.

 

결국 중요한 것은 사막이 매끄러운 공간인가, 도시가 홈 패인 공간인가가 아닙니다. 매끄러운 공간은 홈이 패이게 마련이고, 반대로 홈 패인 공간 또한 매끄러운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매끄러운 공간에선 매끄러운 공간에 적합한 삶과 실천을 창안해야 하며, 홈 패인 공간에선 홈 패인 공간에서 다시 매끄러운 공간을 만들어 살아가는 삶과 실천을 창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동일한 공간을 흘러가는 상이한 두 가지 여행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여행을 구별해주는 것은 "측정 가능한 혹은 척도적인 운동량이나, 단지 마음속에 있을 법한 어떤 것이 아니라 공간화의 양식, 공간에서의, 공간에 대한 존재방식"(MP, 602;II,272)입니다.

유목민은 움직임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지요? 유목민은 이주민이 아니란 거지요.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황량해진 공간을 떠나지 않는다는 의미였지요. 정착민들은 자신이 사는 곳이 불편해지면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그러나 유목민은 그 황량한 공간에 달라붙어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창안합니다. 즉 그들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제자리에서 유목하기", 앉은 채 하는 여행, 차라리 이것이 유목민의 역설적 정의에 더 부합한다는 것은 이런 뜻에서지요.

<노마디즘 2> p630

 

2.

 

홈 패인 공간에 거하면서 매끄러운 공간처럼 홈에 걸림 없이 사는 삶이 바로 '해탈'이 아니겠는가.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즉 마음에 걸림[罣礙]이 없는 경지가 홈패인 공간에서 매끄러운 공간을 누비는 삶이요, 해탈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말이다. 

주목할 것은 해탈은 유목민처럼, 황량한 공간에 달라붙어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창안한다.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수행이라 한다." 수행은, 제자리에서 유목하기, 앉은 채 하는 여행 같은 유목민의 역설적 정의처럼, 마음에 일어나는 괴로움, 그 홈 패임 공간 속에 달라붙어 괴로움을 없애는 방안을 창안하는 것이다. 수행하는 자세, 유목의 경지는 어떤 홈패인 공간을 맞딱트리든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는 고로 두려움이 없다. 마음에 괴로움이 있다면 도망가지말고 "정착민이 자신이 사는 곳이 불편해지면 다른 곳으로 떠나듯이" 도망가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해탈을 이뤄야한다. 그래야 유목민인 것이다. 유목은 한순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야 할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복잡 미묘한 관계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순간순간 변화하는 환경속에서 새롭고 다양한 홈패인 공간을 맞아 지속적인 해탈을 창안해야한다.

 

3.

 

홈 패인 공간을 매끄러운 공간처럼 누비는 것들이 있다. 물과 바람 그리고 무아無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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