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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통(횡단)학

도행지이성

T1000.0 2013. 4. 24. 21:45

 

<언어 너머의 도>

 

道行之而成, 物謂之而然 - <장자> 제물론

"도는 행해짐으로써 이루어지고 사물은 그렇게 일컬어지기에 그렇게 된다."

 

장자는 도가 활동임[道行之而成]을 말하고 있다.[각주:1] 회통의 관점에서 이와 관련해 비트겐슈타인의 글귀가 떠오르는데,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 즉 비트겐슈타인식으로 말하면 도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道可道 非常道] 오직 도는 행해짐, 활동으로서 이루어짐을 다시한번 새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는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마지막 명제들을 보면

 

6.54 나의 명제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의해서 하나의 주해 작업이다. 즉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만일 그가 나의 명제들을 통해-나의 명제들을 딛고서-나의 명제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는 말하자면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후에는 그 사다리를 던져 버려야 한다.) 그는 이 명제들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세계를 올바로 본다.

 

7.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언어(혹은 명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언어를 볼 수 밖에 없으므로, 도는 행해짐으로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사다리를 던져버리듯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한다.[사다리가 머리속에서 사라져야한다.] 이를 극복할때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와 도는 행해짐으로써 이루어진다를 올바로 보게 된다. 언어를 통한 언어 너머의 도를.

 

우리는 언어를 벗어나 사고할 수 없는데, 언어를 통한 언어 너머의 도에 이르는 것이란 무엇인가? <금강경>에서 숱하게 반복되는 이런 표현방식들, 예컨대 "수보리여! 말한바 선법이라는 것은 여래가 선법을 말함이 아니라 그 이름이 선법이니라."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티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티끌들이 아니라 그 이름이 티끌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말씀하신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입니다." 이런 표현들이 언어를 통해 언어 너머에 도달하는 표현방식들인데,

<장자>의 '도행지이성'을 말할때 조차도 이와 같이 해야한다. 그래야 <장자>를 극복하고 <장자>에 이를 수 있다.

 

 

  1. 道行之而成에서 도는 단순히 길을 뜻한다고 해석하기도한다. 안동림 역주 <장자>에서 이에 대한 주해를 보면 "* 道行之而成-길은 [사람이] 지나다니므로 생긴다. <經解><集解>에는 '道'를 道理가 아니고 단순한 길의 뜻이라고 함. *物謂之而然-사물은 명칭을 붙이므로 그렇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물의 특색을 따서 그것을 말(馬)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말이라는 명칭으로 그를 다른 것과 구별하지만, 맨 처음 이를 소(牛)라고 했어도 되었을 것이다. 즉 사물에는 처음부터 명칭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사람이 명칭을 붙여서 비로소 그렇게 다루어지게 된다는 것." 허나 도행지이성의 도를 단순한 길로도 또는 단순한 길이 아닌 도로 해석하는 것은 다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 도행지이성은 도가 활동임을 말하는 바로 이해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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