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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동일한 분자, 동일한 실체, 동일한 형식도 아닌" 그런 통일성은, 각각의 지층에 고유한 어떤 구성단위를 넘어서 질료 내지 질료적 흐름 자체로까지 추상을 밀고 나갈 때 가능합니다. 이미 우리는 '실체'란 "형식화된 질료"라는 정의를 본 적이 있지요? 그렇다면 역으로 모든 형식을 넘어선 질료로 나아가는 것 또한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기관 없는 신체'란 개념이 거기에 있었던 것도 기억하시지요? 기관 없는 신체, 혹은 질료적 흐름 자체는 분자나 원자, 실체, 형식 등의 모든 형식을 넘어서,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조차 탈형식화해서 추상된 개념이고, 그런 점에서 탈형식화하는 방식으로 추상하는 추상기계가 도달하는 지점입니다. 모든 것을 오직 강밀도의 정도만으로 추상하는 기가, 다시말해 오직 강밀도의 차이만 가질 뿐인('세다', '약하다', '뻗친다'등등) 흐름으로서의 기가 이런 의미의 추상기계라면, 강밀도의 분포가 완전히 평평한 상태, 디그리 제로(degree=0)인 상태가 기관 없는 신체요, '일관성의 구도'에 해당합니다. '공(空)'이라는 개념은 디그리 제로인 이 상태, 하지만 멈추어 있는 게 아니라 흐르고 생성하는 잠재성 자체, 그리하여 무(무)나 부재(부재)가 아니라, 모든 지층(색色)을 형성하지만 절대적으로 탈지층화된 상태를 매우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형식으로 추상하는 것은 기껏해야 기본적인 구성단위에, 실체에 이를 뿐이라는 점에서 "불충분한 추상"입니다. 공통된 형식으로의 추상과, 형식 자체를 추상하는 추상은 상이한 추상의 두 가지 방식이지만, 전자는 형식 자체를 추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후자보다 덜 추상적이고 불충분합니다. 하지만 양자의 차이는 단지 도달점의 차이만으로 구별되는, 다시 말해 누가 더 멀리 나갔나 하는 양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극한으로 나아가기 이전에, 아니 추상이 작용하는 첫 순간부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추상입니다. 하나의 유사한 것 사이에서 공통성을 발견하고 그런 공통성을 보편성으로 일반화하는 추상이라면, 다른 하나는 인접한 것 사이에서 형식 내지 형상적 특성을 변형시키면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넘어가는 추상입니다. [각주:1]     

 

T1000.0 : 空氣=色. 공의 변용[내용]이 기로 기의 표현이 색으로. 색은 공이며 즉 실체[공]의 변용[기]으로서의 양태[색].

 

요컨대 형식적 공통성을 추상하는 추상기계가 지층의 구성단위에 의한 통일성을 형성하는 추상기계라면, 탈형식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추상기계는 지층을 넘나들고 어떤 지층의 최소한의 구성단위에 대해서조차 변이의 선을 그리며 탈지층화하는, 그리하여 결국 극한에서는 순수한 질료적 흐름 자체에 도달하는 그런 추상기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지층 안에서 불변성과 보편성을 찾아냄으로써 통일성을 구성하는 추상기계라면, 후자는 불변성이 아니라 변이와 변환의 성분으로서 추상화의 선, 플라노메노에 근접하는 추상기계라고 합니다.[각주:2]

 

 

 

  1. 이진경지음, <노마디즘1> p206 [본문으로]
  2. 같은 책, p2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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