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과 죽음은 언제나 함께 손을 맞잡고 가지요. 그렇지 않나요? 죽음은 삶의 그림자와도 같은 것이지요. 당신이 죽었을 때 당신은 죽은 것이지요. 그런데 당신이 살았을 때는, 죽음에 관한 생각이 당신을 따라다니지요. 사람들이 내 그림들을 보고 이러한 느낌을 갖는 게 아마도 정상일 겁니다. 대체로 나는 낙천주의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그런 반응이 나를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결국 왜 그러면 안되는 거지요? (프란시스 베이컨, 화가의 잔인한 손 210) 2. 공덕천과 흑암천은 둘이 함께 다닌다. 아름다운 미모에 재력을 불러오는 여신강림, 공덕천을 맞으려면 못생기고 가세를 기울게하는 동생 흑암천도 함께 맞아야한다. 공덕천은 취하고 흑암천은 버릴 수가 없다. 하여 부자집 주인은 둘 모두를 쫒아버렸다한다. 반면 ..
도대체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세상과 지각의 일치(상응)를 그토록 절대적으로 요구하게 만드나요? 사실 우리 눈앞에 아름다운 붉은 머릿결을 가진 소녀가, 붉은 주사위가, 혹은 붉은 식탁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뭔가를 지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 이상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우리의 감각이 세상 속의 대상들을 확증한다는데서 출발합니다. 탁자를 보고는 가까이 다가가서 나무를 만져보고 그리고는 믿습니다. 탁자를 느낀 촉감은 탁자의 존재를 검증하며 눈이 받아들인 것을 최종적으로 검증한다고. 확증에 대한 이같은 생각은 내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탁자로 확인되는 어떤 실재의 존재 자체는 이미 전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말은 ..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보는 어떤 것을 우리의 본능으로 어떻게 창조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그것을 거의 해내지 못했지요. 우리는 언제나 닫혀 있다,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건 어떤 것을 본능적으로 창조하는 일입니다. (화가의 잔인한 손 118) 본능을 설명하자면, 그건 정말로 매우 복잡하죠. 수세기에 걸쳐 회화가 어떻게 변천해왔는가를 살펴볼 때,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의해 본능이 수정되는지, 아니면 본능 그 자체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 당신은 자문하게 될 겁니다.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본능이란 스스로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당신이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할 수는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건 기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