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아마 저의 짧고 간결한 표현들은 논리철학논고를 일찌기 읽은 것 그리고 그 속의 금언적 명제들에 빚진 듯합니다. 그러한 설명의 방법이 저에게 인상적이었다는 점에서 당신의 말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제 입장에서 그 책에 열광할 어떤 내용적 이유도 없었고 없다는 당신의 주장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떤 텍스트든지 아주 다양다기한 독서방법을 허용하니까요. 세계는 말 속에 반영된다는 가정을 가지고서 이것을 뒤집을 수 있는 공리로 파악하게 되면 '세계는 말을 반영한다!'라는 명제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이 세계에 대해서 말하면서 세계가 우리의 지각에 대해 갖는 결과를 얘기한다면 저는 지각의 결과에 대해서 얘기하고 세계를 우리 말과 행위의 결과로 파악합니다. (발명품 206)
자가논리적인(자기술어적) 진술의 예를 들어봐 주시겠습니까? "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생각해 봅시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이미 말이 생겨납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설명되지도 않고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가 출발점으로 삼았던 어떤 기관을 참고 삼아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말이란 존재발생적으로 설명됩니다. 말은 있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것입니다. "말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그 질문이 말해짐으로써 저절로 답해지는 겁니다. 이런 것이 일종의 논리적 공중 제비돌기, 하나의 자가논리적인 구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순환성의 원리를 보게 됩니다.(발명품 193)
그래요. 크레타 섬에서 와서는 "나는 크레타사람입니다. 모든 크레타인들은 거짓말을 합니다."라고 말한 에피메네데스를 생각해 보세요. 이 문장을 줄이면 "나는 거짓말쟁이입니다!"가 되지요. "나는 거짓말쟁이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그를 믿을 수 있나요? 믿게 되면 그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진리를 말한 것이지요. 그가 진리를 얘기한다면 그러나 그는 거짓말을 한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거짓말쟁이라고 말했으니까요. 그 시절부터 어제까지 논리학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던 것은 에피메니데스의 진술이 '의미있는 명제는 진리 아니면 거짓이어야 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 이 문장은 우리가 그 문장을 진리로 여기게 됨녀 거짓이 되고 거짓으로..
비록 사람들은 뇌가 혹은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몰랐고 또 모르지만 분명하지 않은 것을 다른 것을 통해서 설명하는 일은 어쨌든 재미도 있고 재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그런 식의 유비나 은유가 정당하고 의미 있나요? 뇌가 수행하는 연산을 어던 기계적 기제를 통해서 특징짓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아무 문제없지요. 저도 당연히 은유적으로 '내가 추위를 느끼면 뇌가 온도스위치를 켠다'라고, 또는 마찬가지 경우에 '자동온도조절장치가 특정 외부 기온을 감지하고서 일종의 온도스위치를 작동시킨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일군의 현상들을 은유의 도움으로 기술하는 것은 명뱋기 정당합니다. 그때 물론 형식적, 수학적, 양적 혹은 시적 속성을 기술하는 모든 것들이 늘 하나의..
제일 먼저 발견해낸 것은 살아있는 존재의 연산(작동)을 설명하는데 사용될 기술적 언어였습니다. 제가 설명이라는 것을 두개의 관찰을 서로 묶어주는 의미론적 다리로 묘사했던 것을 상기해 보십시오. 설명은 언어의 한 현상입니다. 왜 개구리가 특정 장소로 팔짝 뛰어갈까?라고 물으면 개구리는 그곳에 있는 파리를 잡아먹으려고 라고 답할 겁니다. 일어난 일은 사람들이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원인에 유사한 의미론적 관계를 구성한 것입니다. 원인은 미래에, 행위는 현재에 있는 목적원인 말입니다. 개구리의 도약은 특정 목적을 이루려는 개구리의 시도로 비춰졌습니다. (발명품 172)
1.그렇지만 현재 통용되는 다양한 정의들을 정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수학자인 노버트 위너느 사이버네틱스는 생명체와 기계에 있어서 규제와 정보전달에 관한 학문이락 ㅗ적고 있고 기업과 경영 컨설턴터인 스태포드 비어는 사이버네틱스를 조직의 학문으로 정의하며 신경철학자인 워런 맥컬럭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지식의 산출을 다루는 인식이론이라고 얘기합니다. 미국 사어버네틱스 학회의 선언에서는 '사이버네틱스는 사실들의 수집이 아니라 사유의 방식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고든 패스크는 좀 더 일반화해서 '그것은 예술 혹은 철학이고 삶의 방식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규정을 하려는 그러한 시도들 속에서 아주 멋진 무지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먼저 저의 기쁨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신호, 설명, 생각 혹은 이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해나 의미를 체험한다는 것은 어떻게 기술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질문이 갖춘 논리는 특별하군요. 당신은 이해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당신 자신의 회귀성(이해를 이해하려는 태도)에 대해서 회귀적으로(이해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이해하려고) 묻고 있습니다. 당신이 듣고자 하는 것은 제가, 앞에서 이미 말한 대로, 두 가지 기술(서술)간의 의미론적 연관에 다름 아닌 것으로 여기는 '설명'입니다.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 하는 거죠? 이해를 체험한다는 것을 신경생리학적인 혹은 시적인 관점으로부터 특징지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짧은 일화로 답을 해 보겠습니다. 이 얘기는 시냅스에 대한 얘기도 아니고 전기 자극이나 어떤 시인의 은유에 대한 것도 아..
1. 자기 스스로를 조직하는 체계의 특징들이 어떤 다른 방식으로 기술될까요? 자기조직화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시렵니까? 저는 정의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더 이상의 정의를 유보하고 대신 어쩌면 이 개념에 대한 좀 더 심도 있고 동적인 해석을 가져올 일련의 고찰과 아이디어에 관해 얘기해 볼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발명품 143) 2. 자기조직화에 대한 당신의 이해방식은 경영에서의 구체적 통솔과제와 어떻게 관련되나요? 저는 자기selbst라는 개념을 동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조직화라는 개념을 다르게 바라보도록 하고 싶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같은 다소 복잡하고 완결되지 않은 정의를 갖고 행하는 접근방법을 취한다면 어쩌면 통상의 용법을 넘어서는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146) 3. 먼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