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어떤 상황이나 문제가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그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해결책이 있거나 어려움을 벗어날 방법이 있다면, 그 문제로 고통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해야 할 행동은 해결책을 찾는 것 뿐입니다. 그 문제로 고민하기보다는 해결책을 찾는 데 힘을 집중하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이와는 달리 문제의 해결책도 없고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 그것에 대해 걱정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당신은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엔 그 사실을 빨리 받아들일수록 더욱 쉽게 마음이 평화로울 것입니다. 이 원칙은 물론 당신이 직접 문제에 부딪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문제에 해결책이 있..
이대로 좋아요. 아무 문제 없어요. 살아 있다면 뭐든 별일 아니죠.
그러므로 완전과 불완전은 실제로 사유의 양태에 지나지 않는다. 즉 우리가 동일한 종種 또는 유類에 속하는 개체를 서로 비교함으로써 습관적으로 지어내는 개념일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앞에서 (제2부 정의 6) 실재성과 완전성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하였다. (스피노자, 4부 서론) 스님의하루 2021.12.7 . 몸이 아파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중증 아토피와 원인을 알 수 없는 면역 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합니다. 건강 상태가 좋아지면 열심히 일을 하지만, 다시 아토피가 심해지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집 안에서만 지내야 했습니다. 돈을 벌어도 치료비로 계속 나가니 부모님께 다시 손을 벌리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상처와 진물이 심해 벌..
절대적 탈영토화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지피지기 백전백승 무의식의 정복 꿈에서 깨는 것은 꿈속에서 천금을 버는 것보다 더 값진 일입니다. 이건 실제로 꿈에서 깨어나 봐야 ‘그렇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는 천금을 버는 것보다 꿈을 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아무리 말해줘도 와닿지가 않습니다. 금강경에서 이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 ‘이 우주를 일곱 가지 보물로 가득 채워서 보시를 하는 것이 꿈에서 깨는 것만 못하다’ 하는 구절입니다. (에서 인용)
1. 신체 변용의 관념이 분별심이다. 2. 신체 변용은 작은 완전성에서 큰 완전성으로 작은 완전성에서 큰 완전성으로의 이행이다. 불생불멸, 변이만이 있을 뿐. 3. 괴로움은 신체 변용이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할 때의 분별심이다. 4. 분별심에 사로잡히므로서 괴로운 신체는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한다. 5. 실재성과 완전성은 동일하다. 분별이 있을 뿐 모든 것은 동등한다. 6. 완전성을 이해하면, 분별심을 내려놓으므로서 괴로운 신체에서 벗어난다. 신체 변용이 큰 완전성으로 이행한다. 이때 지속되는 신체 변용의 관념이 평상심이다.
살았다 죽었다 역시 분별일 뿐 사실 자체가 아니다. 사실은 변이만이 있을 뿐이다. 죽는다는 건 죽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죽음이 두렵다는 건 어째서 일까? 죽는 순간은 길어봐야 잠깐이다. 애를 낳는 것보다 안 아플 것이다. 애 낳는게 두렵다면 애 키울, 내 걱정 때문이다.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면 두려울 게 무엇인가? 하물며 내가 없는 줄 아는 무아라면 죽음이 무서울 게 있겠는가. 걱정할 내가 없는데 말이다. 죽어야할 실체가 없으니 두렵다는 건 말이 안되고 죽는 작용은 있으니 다만 아쉬울 뿐이다. 내가 죽는다니! 다만 아쉬울 뿐이다. 만일 여한이 없다면 잘 산 게지. 노예로 살 것인지, 주인으로 살 것인지 다음은 없다. 바로 지금이다.
나는 나이고 싶다,는 나에 대한 집착일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나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