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과학의 발전과정에서 강력한 진리개념 혹은 소박한 진리개념이 매우 생산적인 방식으로 인간을 추동 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볼 때 진리라는 모티브는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도 다른 사람에게 테러를 가하려는 광신자들의 단순한 도구에만 머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특정한 이념을 멋진 방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사람(인식하는 사람)의 개인적 신념에 대해서 말하고 있군요. 그렇지만 일단 이 사람도 내가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순간 위험한 동물이 됩니다. 또 진리에 점차적으로 혹은 점근적으로 다가간다는 주장 역시나 제게는 좋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역시 어디에 최종적인 목표가 있는지에 대한 앎이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진리를 지시하..
진리개념을 구해 보려는 당신의 시도는 제게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규제적 의미에서의 진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진리가 무엇이며 무엇이 얻어질 수 있으며 무엇이 추구되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전제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생각이 초래하는 파괴적인 결과들은 건드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게 됩니다. 어찌됐건 사람들은 저기 어딘가 지평선에 어른거리는 영원한 진리에서 출발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추구해야 할 (지향해야 할)규범이라는 개념 역시도 이미 적응으로의 비밀스러운 강요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규범에 복종해야 한다는 그런 강요 말입니다. (발명품 50) T. 규범화는 복종을 강요. 불립문자의 중요성. 진리개념은 비밀스러운 강요, 복종을 전제한다.
당신은 어떤 가설의 궁극적인 검증을 믿지 않나요? 전혀 믿지 않습니다.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이 점에서는 철학가 칼 포퍼와 일치하는데, 제 생각에 가능한 것은 다만 가설의 오류가능성입니다. 가설들은 잘못된 것으로 입증될 수는 있지만 절대적 의미에서 옳은 것으로 증명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리에 대해서 말하는 순간 정치(정치적 과정)가 생겨나고 다른 견해를 지배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시도가 시작됩니다. 만약 진리개념이 애초에 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모두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는 것은 그러면 정말 밋밋한 인식의 동기뿐이군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단지 기능함이 문제가 될 거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기능함 자체도 우리가 환영하고 기뻐할 만한 기적의 연속으로 파악될 ..
진리와 거짓은 대립적으로 서로 조건 짓고 있다는 말이지요. 진리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직간접적으로 거짓말쟁이로 만듭니다. 이 두 개념(진리와 거짓)은 완전히 새로운 관점과 통찰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벗어나고 싶은 그러한 사고범주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진리에 관한 한 상응론자도 정합론자도 아니고 결과론자라는 말이지요. 당신에게는 개념의 내용적 측면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저 그런 사고의 사회적 측면이 테마가 되는 것이죠. (내요적인 정의와 무관하게) 진리 개념이 초래하는 주변적인 결과들로 시야를 돌리고자 하는군요. 당신이 사용한 결과론이라는 용어가 마음에 드는 군요. 사실 제 생각에 진리를 언급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며 인간성의 통일을 파괴합니다. 그 개념은 전쟁을 의..
모든 인식의 행위를 인식하는 자와 뗄 수 없이 엮어 버리는 그러한 급진적 사고는 다양한 학문적, 종교적, 나아가 일상적 인식행위의 중심에 놓여 있는 개념인 진리개념을 불신하게 만드는군요.원래 진리개념은 관찰과 독립적인 세계를 전제할 때 이해되는 것이거든요. 진리란 (사태를) 인식하는 정신과 사태 자체의 일치로 파악하는 것이 보통이지요.이 같은 견해에 관한 한 철학자들은 진리개념에 대한 상응이론적 규정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때 표상과 세계가 근거가 되고 그 둘은 정확한 상응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진리개념의 면면들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이러한 정의로부터 출발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겁니다.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정의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상응이론적 관점에서 정의를 하건 정..
실재적이고 객관적인 가정들의 좌표체계를 넘어서는 그런 다른 언어를 어떻게 좀 더 정확히 묘사할 수 없을까요? 어떤 고정적이고 정태적인 체계를 전제하지 않고서 이 물음에 대해서 말하려면 어떤 형식을 발견해야 하나요? 저도 모르지요. 그저 다른 말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실재라고 생각하는) 놀이를 같이 하도록 다른 사람을 초대하려는 시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바람은 내 말을 (나의 언어를) 잘 구사해서 정치가 됐건, 과학, 시 혹은 무엇이 됐건 모든 대화 속에 나의 윤리가 내재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내가 어떤 문장을 말하더라도 늘 점잖은 사람으로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려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재판관이나 경찰과 같은 지위로 끌어 올리지 않..
1. 저는 다른 핑계를 찾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당신이 저의 윤리적 명령을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논박은 모든 진술이 한정된 가치만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다수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를 택할 자유를 갖고 있고 결정할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이렇게 봐야 되고 저렇게 봐서는 안 된다고, 이렇게 행동해야 하고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그런 절대적 진리는 없습니다. 진리인식에 대한 그러한 철저한 회의와 다수의 가능성에 대한 갑작스런 대면은 인식론적인 현기증을 유발하는군요. 그래서 마치 발밑의 땅이 꺼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들고요. 그래서 붙잡고 늘어질 아르키메데스 포인트가 더 이상 존재하..
1. 답은 스스로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전의 구절이나, 자기가 아닌 지식을 동원해서 문제를 풀려는 것을 야단치고 못하게 합니다. 더구나 공안을 해설하고 답을 알려주는 것은 수행을 가로막는 짓이라고 비난합니다. 중요한 건 말도 안 되는 저 역설적인 질문을 통해 의문을 일으키고 의문, 의정자체를 극한으로까지 밀고가는 것이며, 그 의정 자체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저 근본적인 역설 사이의 심연을 너머야 하는 겁니다. 그걸 넘는 순간, 그는 자신이 찾던 것, '도'에 이르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하지요. 그런 깨달음을 얻는 순간, 수많은 경전에 기록된 깊고 미묘한 불법을 한순간에 얻게 된다고 말입니다. (노마디즘2 352) 2. 스스로의 내재적 사고를 통해 답을 얻도록 유도하는 선사들의 방식은 구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