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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의 고원들

想에 관하여

T1000.0 2012. 9. 26. 11:26

想은 意가 만들고 상은 識에 의해 변한다.

상은 그자체로 앎의 흐름이므로 앎을 앎으로만 삼으면 괴로움이 없지만

이 앎을 후찰라에 부재로 인색해 상을 지으면 탐심과 진심이 동반한다.

즉 부재에 대한 집착을 일으켜 현재를 보지못하게 된다.

따라서 오온, 색수상행식의 순환에서 상이 식에 의해 변하게 될때,

상과 식 사이에 있는 행을 닦아 상이 있는 그대로의 상으로서의 앎이되도록 수행한다.

수행은 탐심과 진심이 동반하지 않도록 상 그대로의 상을 앎의 흐름으로 주시하는 것이다.

상을 짓는 것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 상을 고집하여 탐진심을 일으키는 것이 주목할 문제일 뿐이다.

예컨데 좋은 사람을 떠나보낸다고할 때 좋은 이라는 상이 잘못된 게 아니며 그자체가 있는 그대로의 앎이다.

다만 이 상을 다음 찰라에 부재로 알아버리면 현재를 보지못하고 상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므로

현재를 살지못한다. 즉 현재는 현재로 깨어있지못하고 부재에 집착하는 괴로움이 된다.

비유로 말하면 이는 작은 것을 탐하다가 전체를 잃고 있는 모습과 같다.[이것은 이중의 괴로움이다.]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현재에 깨어있는 것이고

집착을 내려놓기 위해 현재의 앎으로 되돌아가면 집착은 사라진다. 

이러한 수행이 쌓여 순간순간 깨어 있는 삶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앎의 흐름이 되어 살게 된다.

이러할 때가 자연과 일치하는 지혜의 삶이며 가장 큰 지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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