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세 번째는 '참는 것[忍辱]'을 통해서 신심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살면서 맞이하게 되는 수많은 인연들은 한 사람의 의지대로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인연을 맞이하고 보내는 마음에 의해서 고해苦海를 만드는가 열반涅般을 사는가를 가름할 따름입니다.

인연따라 마음이 움직이면 하루에도 수천 번 고해와 열반을 만들 것이며, 인연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열반조차 없겠지요. 인연에 담담한 마음을 열반이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 고해가 없으니 열반이라는 이름도 없습니다.

'참는 것'도 욕망이고 집착하는 마음을 쉬는 것이지만, '인연을 따르는 마음'에는 욕망에 흔들리는 마음도 없고 집착을 쉰 마음도 없습니다. 마음이 인연이 되니 잡으려 하지도 않고 보내려 하지도 않습니다. 잡을래야 잡을 수 없고 보낼래야 보낼 수 없는 것이 인연입니다.

'이익과 손해, 칭찬과 비난, 명예와 불명예, 즐거움과 괴로움[八風]'은 삶에서 늘 맞닥뜨리는 경계이면서, 그것이 인연의 모습입니다. 칭찬에 기뻐하는 것도 비난에 성내는 것도 다 경계에 따라 흔들리는 마음이며 집착이며 고해의 근원이지요. 명예와 불명예 등에 대한 마음 작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경계를 떠날 수도 없고, 경계를 따르지 않을 수도 없지만 인연의 허상을 마음 깊게 새기고, 그 마음으로 경계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참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마음은 경계가 흔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자아 관념과 명예 등에 대한 집착이 경계를 해석하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흔들린 마음이 경계조차 흔드는 것입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삼계三界가 고요하고 마음이 흔들리면 시방十方이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마음은 삼계와 시방을 마음 밖에 세우는 것으로 인연을 등지는 마음입니다. 인연을 등지는 마음이 어리석은 마음이고, 어리석은 마음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삼계와 시방의 경계에 따라 쉼 없이 흔들리면서 어리석은 마음이 두께를 늘려가지요.

 

'참는 것'은 마음이 만들어 놓은 삼독심의 경계를 깊게 이해하고, 그것의 허구를 생각생각으로 이어가면서 인연을 함께 열어가는 것입니다. 생각을 끊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허구를 알아차리는 것이고,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허구이지만 인연으로 실상이 되고, 실상이지만 인연이라 다시 허상이 되니, 실상도 허상도 모두 마음 벗이 됩니다.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며, 취하지 않고 버리지도 않습니다. 마음이 경계를 만들고 경계가 마음을 움직이지만, 움직이는 그 마음을 여실히 알아차리고 집착이 생기지 않게 해야 참는 수행이 익어가는 것입니다. 칭찬인 줄 알지마 그것에 흔들리지 않고, 비난인 줄 알지만 그것으로 성내지 않습니다. 칭찬과 비난의 경계가 분명하지만 그것이 실상이 아닌 줄 알아야 하지, 칭찬인지 비난인지조차 모르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입니다.

칭찬에 흔들리는 마음은 탐심貪心을 키우고, 비난에 흔들리는 마음은 진심嗔心을 키우며,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르거나 칭찬과 비난 실상이 아닌 줄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痴心]을 키웁니다. 그러므로 '여덟 가지로 우리를 흔드는 바람[八風]'의 실상과 허상을 잘 알아차리고, 그 경계에 만나 함께 흐를지라도 경계에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삼독심이 자라지 않게 해야 합니다.

 

참는 것이 욕망을 억제하고 있는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욕망의 허구를 잘 알아차리고, 그것이 마음을 만들어 놓은 집착인 줄 사무치게 알아야 됩니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욕망의 절제는 지나친 고행으로 수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도中道의 실천이란 수행에 필요한 것만큼만 갖추는 것으로 넘치게 갖거나 지나치게 모자라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수행에 꼭 필요한 환경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수행 환경과는 달리 이익이나 손해 등은 인연에서 보면 허구 가운데 허구일 뿐입니다. 더구나 오늘의 이익이 내일의 손해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손해가 내일의 이익이 될 수 있으니, 이익에 대해서도 손해에 대해서도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물속의 그림자와도 같은 인연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깊이 새기면서 깨어 있는 마음으로 인연이 만들고 있는 삶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각주:1]

 

T1000.0 : 마음은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또 그런 마음이 만든 대상이라면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며,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는 게 마음의 본 모습, 있는 그대로의 마음인데, 마음 따라 취하고 버리려 한다면, 즉 흔들린다면 고해를 피할 수 없고 흔들림에 상관없이 흔들림이 없다하면 무미건조한 열반이지만 흔들리는대로 흔들리되 다만 깨어있으면, 집착하지 않으면, 머묾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면 분명히 흔들리고 있는데도 묘하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는 마음이 모르는 마음 그자체가 되어버려 나도 없고 모르는 마음도 없고 오직 마음 뿐이다. 오직 마음 뿐이니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차별이 없어져 흔들림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다한다. 

 

손해를 보아서 아픈 마음도 인연의 총상이고 이익을 보아서 기쁜 마음도 인연의 총상이니 인연의 총상은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 아파서 아프고 기뻐서 기쁘다. 아프고 기쁜 마음마음마다 흔들리지 않는데 아프다고 싫어할 일도 아니고 기쁘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모두가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는 인연의 총상이니. 손해가 나면 이익이 되도록 하고 이익이 나면 손해를 보충하는 중도를 찾아 다만 할 뿐이다.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으로 인연을 따라 사는 것, 즉 평상심이 도를 이루는 것이다. 

 

 

  1. 정화 풀어씀, <대승기신론2>, p360 [본문으로]

'정화스님 풀어씀 <대승기신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에서 도를 찾다  (0) 2012.11.16
정진, 늘 새롭게 살기  (0) 2012.11.16
탐진치  (0) 2012.11.16
무주상보시  (0) 2012.11.15
인연과 양태  (0) 2012.11.15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