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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의 무상한 흐르을 이루는 생명들(法)에게는 빠르고 더딤이 없으나, 법계의 무상한 흐름을 보는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둔함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것을 뜻합니다. 하나의 현상이면서 동시에 앞선 것을 허문다는 데서는 빠르고 더딤으로 나타낼 수 있는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 영리한 마음이며, 흐름을 보편적이며 동일한 것의 상속으로 파악하는 분별은 흐름에 깨어 있지 못한 둔한 마음입니다.

둔하다고 하는 것은 변화에 둔감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영리하다는 것이 미세한 변화에 항상 깨어 있어 변화의 하나하나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의 흐름에서 보면 '잠시도 머묾 없는 현재'와 '차이를 알아차리는 앎'이 함께하기 때문에, 안다는 특성에서 보면 영리한 것 또한 시공간의 상속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변화의 순간순간에 깨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앎 그자체의 속성, 곧 머묾 없는 변화가 앎이 된다는 것을 알아 집착하여 갖고 있는 허상을 내려놓고 번뇌를 여의어 함께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존재의 실상이 이웃 항들과의 공감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개체로 나타나는 하나의 상이 스스로를 해체하면서 다른 현상이 되는 것이 이웃 항들과의 공감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보고 안다는 것이지요. 앎의 항상성과 개체의 무상성이 어울려서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는 것이 무상으로 현상을 나타내고 앎으로 기억을 남기므로 무상성과 항상성이 담보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 정화스님, <육조단경> p194

 

T1000.0 : 닦고 닦고 닦다 보면 단밖에 닦임을 알게 되고, 이로서 함께 아름다운 삶을 사는 무위無爲의 발걸음을 내딛는 활동이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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