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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그 도로를 관리하는 겁니다. 패인 홈을 따라 사람이나 자동차의 흐름이 원할하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 그래서 옆으로 새는 흐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 '도로공사'나 교통경찰들이 하는 게 그거지요. 흐름이 막히면 옆으로 새게 마련인데, 샐 수 있는 옆길은 단단히 막아두었기 때문에 크게 막히는 날이면 대혼란이 벌어지지요. 그래서 막히지 않게 도로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 그리고 막히면 재빨리 출동하여 '뚫어' 주는 것이 바로 경찰들이 하는 일이지요.
2.
반면 초원의 길을 가는 유목민들은 어디 한 군데가 막히는 것만으로 이동이 중단되는 이런 상황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홈이 패이지 않았기에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고, 따라서 막힐 일이 없지요. 혹은 막히면 돌아갈 길들이 사방에 널렸지요. 그리고 더 좋은 길이 있으면 그리 갈 수 있습니다. 마치 물이 그렇게 흘러가듯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유목민이란 말과 결부된 노모스란 "매우 특별한 종류의 분배, 경계나 울타리가 없는 공간 속에서 행해지는 분배고, 몫으로의 분할이 없는 분배"(천의고원2 164)라고 합니다. 물론 노모스라는 말이 "법'을 가리키지만, 이는 원래 '분배'나 '분배양식'을 뜻하는 말이었고, 바로 그런 점이 법이란 말의 어원으로 사용되게 된 이유였다고 해요. 이 책에서 이 개념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지요. (노마디즘2 375)
3.
분과와 전공등을 표시하는말뚝(점)들과 그 점들 사이를 잇는 제도적인 이동의 경로들, 분과적 규칙과 전문가라는 단어로 표상되고 규제되는 소통의 목적과 양상, 그리고 각자의 '업적'과 점수로 환산되는(!) 활동의 실적들이 그중 하나지요. 이 경우 점과 선은 홈패이고 폐쇄된 공간을 만드는 요소들이고, 사유와 연구, 지식의 흐름을 그 공간 안에 가두는 기능을 하는 것들이지요.
다른 하나는 언제나 뜻하지 않은 곳곳으로 자유롭게 '옆길로 새듯이' 흐르면서 규칙에서 벗어나 횡단을 통해 뜻밖의 지식을 생산하는 선입니다. 거기서 분과나 전공이란 말뚝의 점들은 어느 방향으로든 흐를 수 있는, 그 선이 지나가는 점일 뿐이고, 그 선 안에서 새로운 방향을 얻게 되는 점이지요. 어떤 한 점이 지나는 선이 달라지면, 그 점에서의 미분계수- 방향적 성분-가 달라지듯이 말입니다. 그리하여 '비전공'적인 지식이 생산되고, 실적이 아니라 확산과 촉발, 공유와 변용을 위한 지식이 생산되지요. 횡단적 지식, 소용돌이형의 지식, 그것을 만드는 클리나멘 같은 선들, 이것이 유목적 지식의 분배(노모스)가 이루어지는 그런 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