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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어느 날 나는 대통력의 봉인이 찍힌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피노체트와 점심을 함께 하자는 초대장이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사절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은 만찬에 참석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나는 초대에 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가족이 있음을 애원하며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잊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을 했지요.
그에게 인사할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큰아들이 자기는 결코 피노체트와 악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있었고 이 남자와 악수를 했습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피노체트가 다시 일어나 자신의 와인 잔을 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조국을 위하여 건배!" 그리고 우리는 일어서서, 서로 잔을 권하며 들고, 다시 앉아서 '공화국의 대통력'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우아한 자기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공포와 테러를 퍼뜨린 비밀경찰을 관리하는 사람과 거기에 앉아 있었군요. 정부를 비판한 수많은 비판자들이 흔적도 없이 실종된 것에 책임이 있는, 그리고 사람들에게 고문을 명령한 그런 남자하고 말이지요.
딱 맞는 말입니다.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이 모임의 유일한 목적은 서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답니다. 마음 푹 놓으셔도 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종류의 요구들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다시 앉았고, 바로 그 때 나는 내 잔을 들고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나 역시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조국을 위해 건배를 하고 싶습니다."
순식간에 죽음과 같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느끼는 깊은 공포감을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급작스런 두려움에 망연자실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피노체트는 나를 보더니 몸을 약간 앞으로 굽혔습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 대통령과 동석하는 자리에 모이게 디었습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정부 하에서도 드문 경우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회에 여러분과 대통령과 함께,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지적 자유와 우리나라 칠레의 문화적 자율에 기여하자는 뜻으로 건배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나는 잔을 들이켰습니다. 피노체트는 몸을 뒤로 젖히고 손뼉을 네 번 쳤습니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손뼉을 네 번 쳤습니다. 친구 하나가 내게 몸을 돌려 속삭였습니다. "정말 고맙네, 대단했어." 그리고 다시 잡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디저트를 먹고 나서 곧바로 우리는 모두 또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우리 대학의 물리학자인 친구 한 명이 나에게, 피노체트가 혼자 있으며 우리가 그와 자리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그로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나를 재촉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장군들 중의 한 명과 거기에 서 있는 피노체트와 자리를 함께 하기 위해 그와 함께 갔습니다.
나는 그와 다시 악수를 했고, 그가 말했습니ㅏ.ㄷ "이 나라를 위한 당신의 충정에 공감합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a dios roganda, y con el mazo dando." 이것은 스페인 속담으로 대략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신에게 무언가를 기도한다면, 역시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기도와 경건한 소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죠.
정말 기묘한 상황이었습니다. 피노체트가 거기에 서서 지적 자유와 문화적 자율을 향한 내 욕망에 공감한다고 말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의 정치의 모든 목표들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는, 그의 동맹자들의 도움으로 공산중의의 첫 싹을 짓밝기 위하여 이 나라를 다른 나라들에 의존하도록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2.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사람됨이 협소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과 이야기 한 것입니다. 피노체트를 맨 먼저 권력의 자리로 나아가게 했던 - 이로부터 피노체트는 자신의 반란을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언젠가 자기가 그를 "너무 둔감해서 자기 아내조차 속일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오판이었습니다. 필요한 지성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 군 장성이 되는 경우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는 광신적일 수 있고 편협하고 이데올로기적일 수는 있지만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피노체트는 선생님이 얘기한 것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그는 나를 더할 나위 없이 잘 이해했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내가 그를 상관[우월한 사람]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동등한 칠레인으로 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대통령이었고, 우리와 동행했으며, 이 나라의 지적 자유와 문화적 자율을 지키는 이 원대한 임무에 기여해야 했습니다. 그는 우리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욕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절대로 말입니다.
선생님은 통치자와 그 국민들 사이의 관계를 재해석했군요.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나는 그가 건배하면서 썼던 말들을 사용했습니다. 나 역시 우리의 공통의 조국을 위해 건배했던 것입니다.
3.
이건 매우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선생니은 폐쇄적인 체계의 고유한 논리를 이용해서 그것을 공격하고 변형시겼습니다. 선생님은 물론, 조국이 그것에 적합한 훌륭한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물론 유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만찬 후 연설로 아돌프 히틀러를 감동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모욕들이 그러한 상항에서는 성공적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점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누구 완전히 맹목적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한 체계의 고유한 논리를 전복적인 방식으로 이횽하는 것을 의미하겠군요.
그 체계의 고유한 논리에 방향을 잡는 것은, 말해지는 것의 의미나 재해석이 그 체계의 평가절하로 이해될 수 없는 한에서만 작용할 것입니다. ("당신은 정말 더러운 독재자야!"와 같은)모욕은 물론, 매우 어리석은 짓이 될 것입니다. 피노체트가 그것에 반응했음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어쨌건 그를 자극하지 않고 공통의 시각에 호소하기 위해 대단히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봉사의 노력을 하자는 간청을 반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만남은 어떻게 끝났나요?
우리가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또 다른 과학자가 다가와서 매우 비굴한 자세로 피노체트에게 이야기를 걸었습니다. 피노체트는 즉시 차려 자세를 취하고 다시 독재자가 되어 무뚝뚝하게 대꾸 했습니다.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나는 이러한 형태의 비굴함을 가지고 얽히고 싶지 않아서 자리를 물러났습니다. 피노체트가 떠나려고 돌아섰을 때 그는 다시 내게로 와서는 내 팔을 잡고 말했습니다. "차오." 나도 "챠오!"라고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오만하지 않게, 그에게 복종하지 않았고 그에게 권력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나를 한 사람의 동등한 신분의 칠레인으로 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만난 적이 있나요?
아니, 전혀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두 종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교수 동료들 중의 하나는 내 건배의 말이 자기들에게 존엄을 되찾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함으로 ~295)
4.
내 입장을 버리고 실상의 측면에서 본다면 세상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윤리 도덕적인 고정관념의 상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옳고 그름을 재단하는 것은 괴로움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상을 깨고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보면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이 생기든지 미워하거나 원망할 일이 없습니다. 그가 내 마음을 오해해서 나를 미워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세상 누구하고도 원수질 일이 없고 미워할 일이 없습니다. (금강경 강의 193)
5.
수행자가 무엇을 잘하면 뭐 하고, 무엇을 못 하면 또 어때요. 요리를 맡기면 자기 수준에 맞게 요리를 하면 되고, 모르면 배워서 하면 되잖아요. 그래도 누구나 다 각자 자신이 가진 재주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요리를 금방 배워서 잘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배워도 요리를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다고 스스로 위축될 필요는 없어요.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아직 못 만나서 그런 것이니까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해요. 자기를 좀 알았으면 해요. 사람이 만병통치약도 아닌데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겠어요.
숫제 어설프고 실수하는 건 괜찮은데, 너무 위축되는 것은 수행자로서 안 좋아요. 겸손해져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얘기이지 위축이 돼서 비굴하게 고개 숙이고 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좀 어깨를 쫙 펴고 당당하되 겸손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수십 번 당부한 내용입니다.
‘수행자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수행자는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미래는 여성이 중심이 될 거예요. 정토회도 여성 수행자들이 중심이 될 겁니다. 불교도 승려 중심이 아니라 재가자 중심으로 바뀌어갈 겁니다. 그것이 역사 발전의 방향입니다. 그렇다고 남녀차별을 해서 막 남자를 지배하는 그런 여성이 되면 안 돼요. 그렇다고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자는 뜻이 아니에요. 남자가 주먹 쓴다고 여자도 같이 주먹 쓰자는 식의 운동이 아니라 우리는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세상은 남자가 여자를 차별하는 가부장적인 세상이었다면, 이제는 여자가 남자를 차별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해요.
미래 발전에 가장 핵심 요인
그래서 정토회의 미래인 여성 수행자들이 당당해지는 것이 정토회의 미래 발전에 가장 핵심입니다. 그렇게 안 되면 또다시 훌륭한 남성이 한 명 나타나면 나머지는 모두 그 사람에게 순종하는 여성들이 되기가 쉬워요. 그게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은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가 당당한 사람이 되어 평등하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정토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정토회는 자기 고집을 버리고 서로 협력하는 수행자들의 모임이어야지, 위계질서 속에서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토회에 아직 그런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확장할 대상은 아니에요.
<스님의 하루 2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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