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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내 가족과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속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의 존엄과 자기존중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피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특정한 상황들을 피하고, 통행금지를 따랐으며, 대학에서는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는 토론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이 들이닥쳐서 내게 손을 들고 벽으로 가라고 명령했을 때, 나는 손을 들고 벽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나는 내가 더 이상 독재자의 체제에 권력을 부여하기 위해 준비하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1977년 어느 날 나는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이유는 내가 다음과 같이 세 번의 강의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강의는 창세기와 원죄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나는 사과를 따 먹고 그것을 아담에게 준 이브가 하나의 사례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의 계율에 맞선 그녀의 반란이 인간의 자기인식과 책임 있는 행위를 위한, 낙원 - 자기인식이 없는 세계 - 으로부터의 추방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아싸시의 성 프란체스코에.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인간을 지각하는 방식은 그들을 향한 너무나 깊은 존중을 낳기 때문에 그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군대가 처음에는 다른 인간들을 이방인으로 변형시키고, 그 다음에는 그들을 학대하고 죽이기 위해 적들로 변형시킨다고 덧붙였습니다. 세 번째 강의는 예수와 신약에 바쳐졌습니다. 나는 수강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을 사랑의 감정에 의거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게 될까요?'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를 하고 나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며칠 뒤에 나는 감옥으로 보내졌고 죄수처럼 취급되었습니다.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어느 날 누군가가 와서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움베르또 마뚜라나 교수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이 나를 죽이더라도 나는 영원히 교수로 남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의 신분은 그들이 내게 부여해 준 보호방벽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나는 앉아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군사정부가 선포한 방침들의 성명서를 내가 어떤 식으로 어겼다는 거죠?" 이것은 심문을 시작하고 게임의 규칙을 바꾼 것이 바로 나였음을 의미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이 사람들을 능숙하게 다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존엄과 자기존중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심문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나는 계속해서 교수처럼 행동했으며, 그들이 꾸며댄 혐의 들을 반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진화론에 대해 강의를 했고, 그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을 박해하는 것으로 공산주의를 결코 파괴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선 공산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바꾸거나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지요. 그 세 사람은 점점 놀라면서 내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언제라도 강의를 위해 나를 초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 그들은 나를 다시 대학으로 보내주었습니다.(함으로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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