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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의 <육조단경>

둘이 아닌 하나

T1000.0 2013. 5. 11. 12:22

따라서 마음을 그쳐(止) 흐름을 본다(觀)는 것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앎이 대상들을 그저(止) 보면서(觀) 앎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변화가 앎이 되고, 앎이 변화로 자신을 드러내는 현재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마음이 인연의 변화 밖에서 인연을 살펴 아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마음 그 자체가 인연의 본질인 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정한 몸과 마음이 따로 있고 그 위에 번뇌라는 먼지가 묻어 있는 것처럼 몸과 마음을 이해한다면, 몸과 마음과 청정한 앎의 모습을 제대로 본 것이 아닙니다.

- 정화스님, <육조단경> p30  

 

T1000.0 :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때 마음을 관찰하는 입장이 되기때문에, 관찰하는 마음과 관찰 대상인 마음으로 분리되더라도 한 마음인 줄 알아야한다. 마음 그대로가 앎이다[唯識]. 마음은 인연의 총상이며 따라서 그 자체가 인연의 본질인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알아차림이 무지無知로 그치면 소용이 없다. 마음에서 화가 일어남을 알아차림은 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은 인연에 대한] 나의 무지로인해 일어난 것임을 알아차려야하는데 이것이 진정 알아차리는 수행이 아닌가. 따라서 두 번의 알아차림이 있어야한다. 하지만 이 역시 둘이 아닌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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