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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용하거나 작용하지 않거나 마음은 그 상태로 이미 특별한 상태입니다. 이 마음을 다른 상태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인연의 의지를 넘어섭니다. 인연의 의지를 넘어서려는 마음결은 거친 파도를 일으키니 스스로 쓸데없이 번뇌를 만드는 것과 같지요.

마음으로 들어나는 인연은 인간만의 인연도 아니며,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도 넘어서는 인연이기에, 인간으로 살아온 자취로 인연을 재구성하여 알아차리는 우리의 의식으로는 다 알아차릴 수 있는 경계가 아닙니다. 때문에 경계가 뜻대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번뇌를 만드는 마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뜻대로 나타난 듯 보이는 경계조차 인연 따라 흐르니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어, 잡으려는 마음이 번뇌를 만드는 마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뜻대로 된 듯해도 기쁨으로 들뜨지 말고 고요해야 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 듯해도 슬픔으로 들뜨지 말고 고요해야 합니다.

마음이 기쁨과 슬픔에 따라 들뜨지 않는다면 불행과 상대하지 않는 행복한 마음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아가 행복조차 넘어선 온전한 고요 속에 번뇌 없는 마음 상태를 경험하게 되면서 마음 마다 인연 그 자체가 되어 지금 여기를 온전히 살게 됩니다. 무엇이 된 듯한 자신이 존재의 뿌듯함을 안겨준다고 할지라도, 인연이 된 자신의 모습이 그 모습 그대로 완서오딘 존재인 줄 알게 되는 깨달음에는 미칠 수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가 삶의 자부심으로 빛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빛나는 자부심은 인식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 정화스님, <육조단경> p248 

 

T1000.0 : 실재성과 완전성을 동일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가 이미 완전하다. 큰 완전성이든 작은 완전성이든 있는 그대로 인연의 총상이므로 이를 아는 마음이 곧 마음마다 인연 그 자체가 된다. 크고 작은 것이 상대하므로 크다고 해서 큰 것이 아니고 작다고 해서 작은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가 완전하다는 것이다. 이미 완전하므로 칭찬과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 하나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이란 것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차리는 마음이 그 모습 그대로 온전한 인연인 줄 알고 그것 밖에 다른 마음을 찾는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보는 마음과 알아차리는 마음이 빛나는 인연이며 더할 나위 없는 자부심입니다. 그 마음에 색깔을 입혀 빛나는 모습을 담는 것이 빛나는 마음이 아닙니다. 무엇이 되려는 미래의 삶도 내려놓고 무엇이 되지 못한 과거의 삶도 내려놓은 마음입니다.

내려놓은 마음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거나 어떤 모습이었기를 바라는 욕망을 갖지 않습니다. 무엇이 될 자기를 바란다고 하면 부족한 나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가 부족한 나였기에 미래를 꿈꾸면서 현재를 고단하게 합니다. 미래의 나를 부족함이 없이 만들려는 욕망이 욕망을 키우고 있는 것과 같으므로, 미래의 어느 순간에도 결코 온존한 자신을 살기가 어렵게 됩니다. 욕망하는 의지가 욕망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며 키워진 욕망이 현재를 불만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깨달음도 그렇습니다. 깨닫지 못한 마음을 깨달은 마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했던 것 같은 과거를 연상하면서 부족함이 없는 미래를 만들려는 욕망이 부족한 현재를 살게 하는  줄 아는 것이며, 앎으로 빛나는 마음은 한번도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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