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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대상이 있어서 그 대상이 나로 하여금 탐심이나 진심을 내게한다라고 말하는데 실재로 우리 삶이라고 하는 것은 대상이 나로 하여금 탐내게하거나 욕심내게 하는 게 아니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면 탐낼려고 성낼려고 이미 준비를 다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경계가 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마음이라는 것을 화가에 비유하고 있다. 언듯보면 밖에 있는 어떤 것들이 우리 스스로에게 욕심도 내게 만들고 화도 내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그렇게 하고 있다. 만약에 밖에 있는 어떤 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욕심내게 만든다고 하면 그것이 누구에게나 그것이 욕심나는 상황으로 다가와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한 개인에 있어서도 어떨때는 그것이 욕심나는 것으로 어떨 때는 그것이 욕심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진다. 스스로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서 대상이 그렇게 보이고 들릴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대상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대상들이 전부 다 마음이 대상을 그렇게 비춰주고 있고 그러면서 그 대상에 스스로가 그렇게 반응하고 있는 그런 상태다. 즉 욕심이 나는 것은 욕심나는 마음이다. 대상이 나에게 욕심나게 하는 게 아니고 그것을 볼때 욕심나는 마음이 나에게 일어나서 그 자체가 자기 마음이 된다. 대상이 화나게 하면 대상이 화나게 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 숨어있는 준비된 마음이 밖으로 나와서 작용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보고 있고 그때는 다른 것들은 다 숨어있꼬 욕심날때는 욕심으로 성날때는 성남으로 그렇게 자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순간 마음에는 여러가지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만일에 욕심날때는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가 전부 욕심이라고 하는 기운의 흐름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고 성남이라고 할때는 성남이라고 하는 기운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자기 마음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 마음이 스스로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더구나 그러한 것들이 밖에 있다고 굳게 믿고 그렇게 자기를 보는 것이다. 드러난 마음은 제육식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육식은 숨어있는 제팔식의 모습을 가지고 제육식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성내고 욕심내는 것은 육식사에서 일어나고 있지나 실상은 제팔식 가운데 그와같은 기운들이 욕심이나 성내는 모습으로 밖으로 드러나 있다."[각주:1]

 

T1000.0 : 나에게서 일어나는 탐심과 진심을 통해 나의 업식을 보게 된다. 업식은 나라고 구별되는 이제까지의 전생이며 내가 나의 업식대로 탐심과 진심을 낸다면 고스란이 나의 후생의 된다. 만일 탐심과 진심의 내용을 바꾼다면 운명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운명은 또다른 운명일 것이다. 그런데 탐심과 진심의 종자를 아예 소멸시켜버린다면 운명이라고 할 것이 없는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

 

 

  1. 정화스님 <유식강의> 녹취록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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