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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執과 法執을 모르는 것은 근원적으로 無明이라고 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무명이 모든 사물을 제한시켜서 보는 특징이 된다. 이 무명은 흔히 말하는 지성이다. 무엇을 알아채는 것을 그 특성으로 하는 성품이다. 우리가 지성인, 지성인 하는 지적인 활동을 하는 특성은 실상에 있어서는 무명이다. 무명은 뭘 모르는게 아니고 알기는 알되 잘못 이해하는 것. 무명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제칠식에서 작용하는 항행불공무명이라고 하는게 있고, 이것은 항상 작용하고 있는, 행은 작용이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 무명이라고해서 이것은 자아를 아집을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항행불공무명이라고해서 제칠식에서 항상 작용하고 있는 무명이 있다. 근데 제칠식이라고 하는 것의 특징이 뭐냐면 유부무기라고해서 무기라고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업을 불러일으키는, 다음 생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했다. 유부무기. 제칠식에서 비록 지성이 잘못 활동을해서 삶을 제한적 자아라고 하는 제한적 영역만을 이해하는 특성으로 앎이 작용하기는 했지만 그 작용하는 힘이 그것에 의해서 제한 없는 나를 덮어서 번뇌에 물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 힘은 굉장히 약해서 자기 삶에서 다음 생을 일으키는 스스로 다음 찰라에 자아를 구성해서 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은 없다. 제칠식 무명이 보다 더 본질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삶에서 윤회를 계속하게 하는 그 힘의 바탕은 되지만 실질적으로 선악업을 이끌어내느 작업은 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이다. 또 제육식에서 작용하는 무명이 있다. 육식의 번뇌속에 癡라고 하는 심소가 있다. 그 치심소가 육식에서 발효하는 번뇌다. 이 번뇌는 선,악,무기에 다 통한다. 제칠식에서 작용하는 무명은 무기에만 통하는데 제육식에서 작용하는 무명은 선,악,무기 모든 곳에 다 통한다. 다음 삶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지금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보고듣고 있느냐하는 이와같은 활동이 스스로 다음 삶을 불러일키는데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거기에 있다. 제육식에서 작용하고 있는 무명이라고 하는 것은 선,악,무기에 다 통하는데 육식의 무명, 즉 치심, 치번뇌. 육식에 보면 심심소로 나와있습니다. 이 치심소가 선악무기를 통해서 다음 삶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무명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여기서 말하듯이 지성이다. 지성은 뭘 아는 것인데 무명이 왜 지성이냐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알기는 알되 잘못하는 것이다. 잘못 아는 것자체로는 선악업이 아니다. 잘못하는 것을 통해서 거기서 사물들에서 나라고 하는 것을 설정하고 나에게 잘 맞는 것을 대해서 탐심을 부러일키고 나에게 잘맞지 않는 것에 대해서 진심을 일으키는 힘을 반드시 끌어내게 된다. 그래서 이 무명이라고하는 것이 무엇을 끌어내냐면 탐심과 진심이라고 하는 번뇌를 만들어내게 된다." [각주:1]

 

T1000.0 : 두가지를 기억하자. 1. 하나는 육식의 활동이 "다음 삶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지금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보고 듣도 있느냐하는 이와같은 활동이 스스로 다음 삶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원인이라는 것"이고, 2. 다른 하나는 지성이 무명이라는 것. 왜냐면 알되 잘못 알고 있기에 나라는 주체를 설정하고 탐심과 진심을 불러일으켜 번뇌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

 

 

  1. 정화스님, <유식강의> 녹취록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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