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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보다 행위를 지향하는 서양문화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인식한다고 하는 특별한 상황을 마주하기를 전통적으로 꺼려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자신을 보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것은 마치 "앎을 알면 안 된다"라는 금기가 있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실제로 가장 가까운 우리의 경험세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세상에 온갖 부끄러운 일들이 많짐나 이 무지야말로 가장 부끄러운 것에 속한다.

2.

우리가 인식이 기초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기를 꺼리는 한 까닭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분석도구를 분석하기 위해 그것을 다시 분석도구로 쓸 수밖에 없다면 이때 생기는 순환성 때문에 어지러움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마치 눈에게 눈 자체를 보라고 요구하는 것과도 같다. 네덜란드 화가 에셔의 작품인 그림 5는 이런 어지러움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무엇이 전체 과정의 기초를 이루는지, 다시 말해 서로를 그리고 있는 두 손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 손인지 알아낼 길이 없다.
(앎의 나무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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