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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실재와 인식을 서로 독립한 것으로 보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많은 생각들은 낯설고 그저 '철학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제어학자 푀스터(Heinz von Foerster)가 1972년에 과학에 던진 요구는 의미심장하다. 그에 따르면 우주를 기술하는 일은 그것을 기술하는 사람, 곧 관찰자의 기술도 포함해야 한다. 이때 관찰자를 생물로서 기술하는 일은 생물학자의 몫이다.
관찰자가, 다시말해 '언어 안에 있는 생물'이 실재에 대한 모든 인식과 이해의 중심에 놓인다. 여기서 실재란 관찰자의 인식행위로부터 나온다. 왜냐하면 관찰자가 가르는 구분들을 통해 비로소 관찰할 개체들이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렐라는 이 창조적 인지과정을 가리켜 '있게 하기(Ontierern)라 부른다. 여기설 실재는 곧 개념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재란 개념을 아예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것을 괄호 안에 넣으면 된다. (실재). 이렇게 쓴 실재란 주체와 얽혀있는 구성물을 뜻한다. 이 구성물이 사람들 사이에서 상호 조정될 때 이것은 실재의 성질을, 곧 객관적 존재의 성질을 띠게 된다. 따라서 이른바 '엄밀한'과학과 '유연한' 철학 사이의 전통적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지은이들이 일하는 산티아고의 연구소 정문에는 "신경생물학 연구소"와 "실험인식론"이라고 쓰인 낡은 정식간판 옆에 "신경철학"이라고 손으로 쓴 간판이 걸려 있다!
2.
이 책에서 독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개념들과 계속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것들은 그저 새로운 단어가 아니라 또렷이 정의된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 이것들은 우리와 무관한 '객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너무나도 확실한 강박관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사고의 새 차원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독자들이 접할 주요 개념들로는 무엇보다도 생명체의 근본기제인 자기생성, 다세포생물이란 개념을 확장한 메타세포체, 자연선택을 제시할 자연표류, 생명체와 신경계를 특징짓는 작업적 폐쇄성 등이 있다. 나아가 언어는 사람다움과 관찰가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며 사랑은 사람이 사회화되기 위한 조건이라고 서술된다.
3.
지은이들은 관찰자의 인식행위가 다른 모든 것들에 앞선다고 되풀이해 주장한다. 하지만 인식행위는 관찰자에게 사회적 구속과 윤리적 책임을 부과한다. 왜냐하면 인식이란 인간의 생물학적 공통성에 근거한 사회적 상호조정 속에 공동으로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립하는 윤리는 다음과 같이 사실에 바탕을 둔다.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란 우리가 타인들과 함께 만들어낸 세계이며 이 세ㅖ는 다시 우리에게 거꾸러 영향을 미친다. 이 사회적 세계에서 우리는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따라서 타인의 인정은 이 세계의 성립조건이다.
(앎의 나무, 독일어판 옮긴이 머리말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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