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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색깔의 물체들로 가득한 세계를 경험하는 일과 그런 물체들에서 온 빛의 파장 구성은 말 그대로 서로 다른 것이다.
내가 오렌지를 집 안에서 뜰로 나가도 오렌지는 똑같은 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컨대 집 안의 형광등에서 나온 네온 빛은 주로 단파의 푸른빛으로 이루어진 반면, 햇빛은 주로 장파의 붉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오랜지의 색이 우리에게 꽤 일정하게 보이는 일과 오렌지에서 반사된 빛의 성질은 단순하게 서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2.
우리가 어떻게 색깔을 보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지 않으므로 여기서 자세히 늘어놓기 어렵다. 어쨌든 요점은 색체지각 현상을 설명하려면 먼저 우리가 바라보는 물체의 색이 그 물체를 떠나온 빛의 속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색채지각이 신경계의 특정 흥분상태에 - 이것은 신경계의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요.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자극을 받은 우리의 감각이 우리 앞에 펼쳐내 보이는 것뿐입니다. 인식의 입구에서 (인식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소위 세계의 심부름꾼들은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은) 그들 자신의 특별한 속성들을 없애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오늘날은 자극의 무차별적 부호화가 얘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극 혹은 교란이 있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이게 신경세포가 알려주는 전부입니다. 그러나 교란[섭동]의 원인은 불분명하고 그 원인은 특수하게 부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시신경섬유를 식초로 자극할 경우 우리는 색이 있는 빛을 지각하게 됩니다. 혹은 미각을 느끼는 혀의 돌기를 몇 볼트의 전극봉으로 자극할 경우 우리는 식초 맛을 느끼게 됩니다. 생리학 교재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관찰을 통해 볼 때 외부세계가 내부세계에 베껴진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고도 말이 되지 않는 얘기라 할 것입니다. 식초가 색의 흔적이 되고 전기가 식초가 되는 겁니다! (발명품 22)]
3.
이 일을 지금 바로 시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똑같은 신경흥분상태가 (예컨대 청록색을 보는 일이) 상이한 구성의 빛을 통해 '섭동작용'을 받듯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다('색 그림자'실험이 그 한 예다). 어떤 사람이 경험한 색깔의 이름 말하기와 그 사람의 신경흥분상태 사이에서 대응관계를 찾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색깔 이름 말하기와 빛 파장 사이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떤 신경 흥분이 어떤 섭동작용에 의해 유발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섭동작용물의 속성이 아니라 개인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구조적 결정론-일체유심조]
4.
이제까지 말한 것들은 시각경험의 모든 차원들(운동, 표면구조, 형태 등)과 그 밖의 다른 모든 지각양태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들은 보통 무엇(예컨대 공간이나 색채 등)을 그냥 받아들여 지각한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는 이미 개인의 구조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업식]
5.
이런 종류의 실험들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이것들은 우리의 경험이 우리의 구조와 뗄 수 없게 얽혀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세계의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색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색채공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한 세계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계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라는 문제는 우리의 생물학적, 사회적 행위의 역사와 떼놓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뚜렷하고 당연해서 오히려 깨닫기가 매우 어렵다.
(앎의 나무 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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