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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데 동일화하려는 힘이 '진리'의 이름을 얻어 가르쳐지고 집단적으로 강요되는 지금 세계에서, 그 윤리학적 관심은 타인들, 아니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는 동일성의 권력을 정지시키고 약화하려는 '정치학적' 관심을 뜻한다. 이를 '차이의 정치학'이라고 명명하자. 

석가모니가 당시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이나 성에 개의치 않고 모든 사람을 승려로 받아들였던 것을, 심지어 앙굴라말라창은 '악마적 범죄자'로 지탄받았던 이들마저 승려로 받아들였던 것을 나는 이런 의미로 이해한다. 굳이 불교라는 말에 큰 수레를 뜻하는 '대승'이란 말을 덧대었던 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윤리학이란 말이 빠지기 쉬운 '개인'이란 영역이 아니라 중생이라고 부르는 뭇 사람들, 집단적인 동일성의 권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의 삶을 안고 가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으리라.

<불교를 철학한다 p58>  

 

2.

무상이 왜, 어떻게, 동일성의 권력으로부터 차이의 정치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이해하면서, 왜 대승이여야하는가를 논리적으로 알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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