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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결코 누구도 확신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 생각들을 접하고는 골치 아파합니다.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나는 결코 그들의 견해들을 교정해서 내 자신의 생각을 그들에게 강제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나와 대화하려하고 대화하고 싶어하는 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일 수 있을까요? 자유의 황홀한 이점들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사슬에 묶어야만 할까요? 폭력을 거부하라고 우리가 사람들을 강제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접근법은 결코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내 견해는 이렇습니다. 소위 윤리적 법률과 규범들조차도 성찰의 가능성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개인적으로 책임 있는 행동의 토대들을 제거하고 복종을 요구합니다. 더 면밀히 살펴보면, 그것들은 폭정을 위한 또 하나의 표현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어떤 세계관이나 삶의 방식이 선택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믿음과 행위들에 내재해 있는 결과들을 그들에게 제시해 줄 수 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하도록 강제하거나, 사물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다소 폭력적으로, 그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있음에서함으로 79)
3.
미적인 유혹이라는 생각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즐긴다는 통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들이 우리에게 기분 좋은 느낌을 가져다 줄 때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합니다. 다른 한편, 어떤 것을 추하다, 그리고 불쾌하다고 하는 판단은 '기쁜지 않음'을 가리키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기분 좋고 유쾌한 것에 대한 우리의 견해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미적인 것은 조화와 기쁨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향유입니다. 어떤 매력적인 풍경은 우리를 변형시킵니다. 어떤 아름다운 그림은 그것을 계속해서 쳐다보도록 만들고, 색채들이 어우러져 이루어 내는 구도를 향유하도록 만들고, 사진 찍게 만들며, 어쩌면 그것을 사도록 만들기조차 합니다. 그림과 맺는 관계는 사람들의 삶을 변형시킬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그림은 미적인 체험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작은 완전성에서 큰 완전성으로 신체 변용의 이행이 기쁨이다. 이 기쁨은 어떤 그림이 아름답다고 표상되는 체험이다. 한 신체로 하여금 아름답다고 체험하게끔 유혹하는 것, 미적인 유혹]
4.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조작을 통해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설득하려는 의도를 결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이런 식으로 유혹하고자 했다면 아름다움은 사라졌을 겁니다. 설득하려는 모든 시도는 압력을 가하게 되고 귀 기울여 듣기의 가능성을 파괴합니다. 압력은 원한을 만들어냅니다. 사람들을 조작하고자 하는 것은 저항을 자극합니다. 조작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건 그들에게 혜택이 되고 이득이 된다는 인상을 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맺은 관계를 이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작을 당한 사람들이 드러내는 행동들은 사실상 조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합니다. 따라서 조작은 진정,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미적인 유혹과 관련해서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일은 그저,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나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 있는 것과 내가 하고 있는 것 사이의 어떠한 불일치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득하고 유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생산하고 명확하게 하는 체험들을 낳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와 알고 지내게 되는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 앞에서 보게 되는 것을 그들이 받아들이길 원하는지를 스스로 혼자 힘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오직 말해지는 것과 행해지는 것 사이의 불일치가 없을 때에만, 핑계도 없고 압력도 없을 때에만, 미적인 유혹은 펼쳐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귀 기울여 듣고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제약받지 않고 기분 좋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만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들은 공격받지 않으며, 어떤 것에 하도록 강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래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도 그 자신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무방비 상태로 내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언제나 바람직하게 유혹적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질문들과 두려움들이 갑자기 정당하게 되고, 서로 마주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들이 출현하기 때문입니다.(83)
T.
내가 누군가에게 미적인 유혹이 되는 것은, 어떤 조작이나 연출이 아닌 그저 나인 나의 모습을 견지하는 것 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아름답다, 이 느낌은 최종적으로 청자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위해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기에 그저 나 자신으로 사는 길 뿐이다. 사고와 삶의 일치를 이루는 나. 나 자신을 위해 사는 삶.
행여 나를, 미적인 유혹으로 느낀다면, 놀랍고, 감사할 것이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립니다." (화가의 잔인한 손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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