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보시바라밀布施波羅密'을 실천하는 이유는 보시라는 선행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연법이 만들고 있는 세계는 본래부터 집착이나 욕심이 없는 세게임을 알고,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모든 소유를 비우고 나누는 것입니다.
나의 것을 비우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나눈 것이 '나'입니다. 다 비우고 나눈 자리가 인연의 공성이 드러난 자리이며, 진여인 법의 본성이 빛나는 자리입니다. 나의 것을 비우고 '나'조차 비운 자리가 본연의 나이면서 '나'라고 할 수 있는 나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인연이 드러난 그대로가 온통 '나'이며, 그 '나' 밖에 다른 나는 없습니다. '인연이 나'이기 때문에 삶은 수행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완성된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다. 인연을 보는 눈이 삶을 보는 눈을 완전히 바꾸게 한 것입니다. 1
T1000.0 : 나와 나의 것을 비우는 것이 보시. 보시로 빈자리에 인연의 공성이 드러나 인연따라 필요한 제모습을 자유자재로 취하니 빈 자리의 충만함이 무궁하다. 만일 보시를 물질적인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나의 '것'은 비우되 '나'는 채우는 것이 되므로 공덕이 없다. 보시바라밀은 연기와 무아를 알고[解] 실천하는[行] 수행으로 육바라밀수행의 첫번째.
- <대승기신론2> p 284 [본문으로]
'정화스님 풀어씀 <대승기신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욕바라밀 (0) | 2012.11.14 |
---|---|
지계바라밀 (0) | 2012.11.14 |
마음 쉼 혹은 무위 (0) | 2012.11.14 |
피부에 팍팍 와닿는 화두 (0) | 2012.11.14 |
대비심 (0) | 2012.11.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