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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자체가 분별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있으므로 무명의 의한 세계 해석이 가능하지만, 곧 인연이 제 나름대로 세계를 해석해서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 무상한 인연이므로 인연마다 틀을 만들면서 동시에 틀을 해체하고 있다고 해야겠지요. 인연의 무분별을 틀의 해체라고 본다면 인연의 분별은 틀을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틀이면서 틀일 수 없는 인연에도 깨어 있어야 하지만, 틀의 연속인 기억에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마음이 인연을 바르게 해석하는 마음이면서도, 인연이 만들고 있는 분별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넓고 깊은 인연의 어울림을 아는 마음, 곧 해석하는 마음이면서, 그 해석에 머물지 않으니 아무 것도 모르는 마음과 같습니다. 모르는 데서 보면 언어의 해석 너머에 인연이 있는 것 같고, 언어의 구성을 남기지 못한다고 하면 해석된 인연이라고 할 수 없으니 언어 속에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인연이 언어에 갇히기도 하지만, 다른 순간에는 인연이 언어를 넘어서게도 하므로, 갇힌 것도 갇힌 것일 수만은 없으며, 넘어선 것도 넘어선 것만이 아니지요.

그 가운데 어느 하나로만 세상을 보는 것은 인연 밖에서 서 있는 '홀로 섬'이며 '외로움'입니다. 업식이 그렇지요. 해석된 언어의 틀만으로 인연을 읽어 내려는 앎이기에 갇힌 것은 갇힌 것만으로, 넘어선 것은 넘어선 것만으로 읽어내면서 인연 속에서 인연을 등지는 앎입니다. 업식을 넘어서지 못하면 업식으로 읽고 있는 현재가 인연의 전부일 수밖에 없으니, 그것 밖에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없지요. 인연의 모습마다가 세계 해석이므로 다양한 모습과 앎들이 그 자체로 세계가 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각주:1]

 

T1000.0 : 머물지 않는 마음은 분별에도 무분별에도 머물지 않는데 그 방식은 생성과 해체를, 생사를 찰나찰나 이어가는 것이다. 한찰라에 창조와 해체가 있어 해체가 곧 창조이고 창조가 곧 해체인 방식이며 생이 곧 사의 과정이고 사가 곧 생의 과정이 되어 생사생사가 이어지는 순간순간 새로움이다. 순간순간의 새로움이란 매순간 아직 경험하지 않은 새로움이니 모르는 마음이고 이는 머물지 않는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1. 정화스님 풀어씀, <대승기신론2> 2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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