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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게

사실과 생각 3

T1000.0 2020. 8. 10. 21:50

1.

그러나 수행자는 전혀 다르게 생각합니다. 지금 괴로운 것은 옛날의 아픈 경험이 떠올라서 괴로워진 것입니다. 지금 누가 내 몸에 손을 대서 괴로운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괴로움은 성추행이라는 행위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가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 오빠들이 내 얼굴에 뽀뽀를 하고 내 가슴을 만졌다. 성추행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괴로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내 몸에 손을 댔던 흔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나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만약 동네 오빠들이 아니라 어머니나 아버지가 귀엽다고 뽀뽀를 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면 지금껏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즉 똑같은 행위라도 내가 좋아했느냐 싫어했느냐에 따라 사랑도 되고 성추행도 되는 것이니, 결국 사랑이나 성추행은 마음이 일으키는 작용일 뿐입니다. (날마다 108)

2.

그런데 왜 간밤에는 시원하게 마셨는데 오늘 아침에는 토했을까요? 원효는 여기서 깨끗함과 더러움이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체유심조'다. 즉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 생각이 일어나니 만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만법이 사라진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원효가 해골에 든 물을 마시고 토했다는 것은 성추행을 당해서 괴로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원효는 그 순간에 이 괴로움이 바가지나 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난 다는 걸 깨침으로써 해탈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손인데 내가 싫어하니 괴로움이 되고 내가 좋아하니 사랑이 되는구나, 사랑과 괴로움이, 기쁨과 즐거움이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구나'하고 깨치면, 그런 경험을 통해서 도리어 해탈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109)

3.

우리 몸은 아무리 성스럽게 하려고 해도성스러워질 수도 없고 아무리 더럽히려 해도 더러워질수가 없습니다. 몸은 단지 몸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더러워지고 성스러워지는 것은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바로 이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이는 우리가 늘 외우는 <반야심경>에도 있는 말씀입니다. "제법은 공하다. 공의 세계에서 볼 때는 불생불멸이요, 불구부정이요, 부증불감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야심경>을 늘 독송하면서도 이 몸이 깨끗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모릅니다.
만약 어렸을 때의 동네 오빠들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내게 해를 끼쳤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제법이 공한 이치를 깨달으면 그들이 나를 더럽힐 수가 없기 때문에 미워할 것도 용서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만이 내가 그들의 행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길입니다.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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