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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는 개공이다. (一切皆空)
일체는 유심조다. (一切唯心造)
고로 개공과 유심조는 같은 것이다.(= 色卽是空)
보충1. <도덕경> 1장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1
이름지어 부르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을 천지의 시작이라고 하고 이름이 있는 것을 만물의 모체라 한다.
그러므로 이름에 집착하지 않으면 천지의 오묘함을 볼 것이고
이름에 집착하면 만물의 차별상을 볼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이름이 다를 뿐이다.
둘의 같음을 두고 검다고 한다. 검은 것 속에 검은 것이 하나다. 2
모든 오묘함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묘
故常無慾 以觀其妙 常有慾以觀其徼
고상무욕 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此兩者 同出而異名
비양자 동출이명이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보충2. <부처를 쏴라>에서 옮김
이 세상의 시작
"이 세상은 어디서 시작됩니까?
어떤 사람이 숭산 큰스님께 물었다.
"이 세상은 당신의 입에서 시작됩니다. 허허허! 아시겠습니까?"
질문자는 말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이 무엇이냐. 이것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당신이 시공(時空)과 인과(因果)를 만듭니다. 질문을 하는 그 몇 초 동안에 이 세상을 만들었단 말입니다. 과학에서는 한때 시공과 인과는 절대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에서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말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이 세상과 시공을 만들어 냅니다."
"여전히 이해가 안 됩니다."
질문자가 말했다. 다시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시간이 무엇입니까? 이를 알아야 해요. 우리는 한 시간, 두 시간 이런 단위를 써서 시간을 나타내지요. 그러나 내 생각에 따라 한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짧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못 봤던 여자 친구를 공항에 마중 나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 그런데 비행기가 연착되었어요. 5분, 10분, 20분, 30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요. 기다리다 보니 한 시간이 지났어요. 십 분이 하루처럼 느껴져요. 이 한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죠. 여자 친구를 너무 보고 싶으니까. 앉아서 기다리며 이렇게 말할 거예요. '왜 이리 늦어? 왜 아직 도착하지 않는 거지?'
그런데 친구들이랑 나이트클럽에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밤새 마시고 춤추고 놀다 보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리지요. 이럴 대는 똑같은 한 시간도 너무 짧게 느껴집니다. '아니, 한 시간이 벌써 지났어? 일 분 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이렇게 마음은 한 시간을 길게 만들기도 짧게 만들기도 합니다. 시간은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시간은 생각이 짓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일체유심조'라고 설하셨어요. 보다시피 우리 일상에서도 이걸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공간도 마찬가지예요. 스페인은 여기, 뉴욕은 저기, 한국은 이쪽에, 일본은 저쪽에 있어요. 스페인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가 북쪽, 저기가 남쪽, 동쪽, 서쪽이야.'라고 말합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북쪽은 여기, 남쪽은 저기, 동쪽은 여기, 서쪽은 저기야.'라고 할 거예요. 내가 여기에 있으면 나의 동서남북도 이와 같겠지요. 내가 없어지면 동서남북도 없어집니다.
인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행을 하면 천당에 가고 악행을 하면 지옥에 가겠지요. 그게 바로 인과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면 어디로 갑니까?
그렇기 때문에 바로 자신이 시공과 인과를 만들어요. 나는 내 세상을 만들고, 당신은 당신 세상을 만들어요. 고양이는 고양이 세상을, 개는 개 세상을 만듭니다. 신은 신의 세상을, 부처는 부처의 세상을 만들어요. 당신이 100퍼센트 신을 믿으면 죽을 때 당신 세상은 없어지고 신의 세상으로 갑니다. 100퍼센트 부처를 믿으면 당신 세상은 없어지고 부처의 세상으로 가비다. 그러나 자신의 참나를 100퍼센트 믿으면 참나의 세상을 만들어 대자유인이 됩니다. 천당이든 지옥이든 아무런 걸림 없이 오고 갈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숭산 큰스님께서 질문자를 바라보며 질문하셨다.
"자,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어떤 게 좋습니까?"
질문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입을 열 때마다 당신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질문자가 물었다.
"그럼 입을 열게 하는 그 사람은 누구죠?"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대중이 웃는 가운데, 가만히 앉아 있던 질문자가 큰스님게 절을 올렸다.
보충 3. <있음에서 함으로>에서 옮김, [ ]은 옮김이 첨부.
마뚜라나 내 주장은 그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관찰자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일체유심조]. 관찰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일체개공]. 관찰자는 모든 지식의 기초입니다. 인간 자신, 세계 그리고 우주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주장의 기초입니다. 관찰자의 소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종말과 소멸을 의미할 것입니다. 지각하고, 말하고, 기술하고, 설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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